유행 편승

by 희량

얼마 전에 난생 처음으로 크롭 티를 샀다. 내 몸에 어울리는 것 같아 흡족했다. 배때기를 내놓고 다니는 건 처음인데 이렇게 시원할 일인가? 게다가 트렌드와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니 요즘 애들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들떴다. 요즘 애들이 되었다는 건 세상의 트렌드를 움직이는 무리에 살며시 끼어들었다는 뜻이다. 뒤쳐지지 않았음을 가까스로 증명했다.


크롭티가 유행한 지가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이제야 산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유행을 외면해오려 애써왔나보다. 나름 필사적인 편이었다. 새 옷을 사고 싶어하는 욕구는 파도가 밀려오듯 끊임없이 찾아오고, 그 높이도 크다. 파도 중에서도 너울성 파도랄까. 지갑과 지구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패션의 현상에 대해 탐구하는 동시에 환경과 사회에 이로운 생각을 하려 노력하다 보면 패션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왜 이렇게 예쁘고 멋진 옷들을 자꾸 만들어내는 거냐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패션의 본질임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래서 더 신랄하게 비난할 수 없음이 통탄하다. 색다름을 향하는 인간의 시선은 참 간사해.


유행이란 몹시 주도면밀해서, 허리선의 위치나 치마의 길이나 자켓의 품 같은 미묘한 변화로 단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옷장에 오래되었지만 멀쩡한 옷들을 꺼내입어보았다가, 참을 수 없이 꾸져서 다시 처박아버린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유행이 당연한 규칙으로 적용되는 모든 분야는 꾸준히 돈을 벌 수 있을 거다… 새 옷에 대한 욕구를 가까스로 잠재우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위험하다.


하지만 도태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겉모습은 중요하다. 오랫동안 크롭티를 부정해오다가 챙겨입어보니 기분이 산뜻했다. 얼른 밖으로 나가서 세상 사람들한테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패션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체면도 세운 것 같았고, 맵시가 좋으니 내 몸과 태도에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 3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패션 암흑기였다. (학창시절에도 뛰어난 적은 없지만 교복이라는 치트키가 있으니 패스.) 회사에 다니는 3년 동안은 최대한 간단히 입고 다녔다. 비즈니스캐주얼이라는 정해진 스타일 코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새옷도 거의 사지 않았다. 지갑과 지구에 떳떳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쏙 들다못해 흔들어대는 옷들만 사야 했는데, 비즈니스캐주얼은 마음에 드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구성만 갖추고 돌려 입었다. 회사에 잘 보이려는 사람도 없는데 뭐 대단하게 꾸미고 다니나 싶어 그땐 렌즈도 포기하고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러다 회사를 탈출하고 학교에 오는 순간, 잠자코 있던 패션 욕망이 꿈틀거렸다. 내 패션을 옥죄는 스타일 규칙이 사라지자마자 새 옷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시끄럽게 일어났다. 학교는 잘 보일 사람이 없어도 꾸미고 가고 싶은 곳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세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연스러운 공간. 무엇을 입고 나갈지 고민하는 시간이 다시 즐거워졌다. 그 시간은 내일을 기대하는 시간이었다. 또 다른 하루를 환영하고 맞이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생기를 되찾았다. 패션을 얽매는 보수적인 회사의 해로움이란…!


패션은 참 요망하지. 자기표현이라는 패션의 한 기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데 은근히 중요하다. 내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나를 꾸며서 밖에 내놓는다는 건 자신감도 주고 하루를 우렁차게 보낼 기운도 준다. 패션 산업이 과소비의 대명사라 그렇지, 패션은 일상의 태도를 책임지는 보이지 않는 중대함이 있다. 그러니 내게 잘 어울리는, 꼭 사야 하는 옷들로 조금씩 옷장을 채워가며 옷차림을 구성해야지. 맵시는 소중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