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고통

by 희량

오늘은 고통에 대한 글 외에는 아무런 문장도 시작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이나 주저했다. 아무나 붙잡고 허락을 구하고도 싶었지만, 그마저도 무례와 폭력에 가깝기에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쓰고 싶어 죽겠는 이 마음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도저히 속으로 삼켜낼 수가 없고, 내 머릿속에만 담아둘 수가 없다.


여자친구들이 회사에서 남성 상사 또는 동료로부터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얘기를 세 번째 들었다. 여자친구들이 심리적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얘기를 네 번째 들었다. 이십대의 중턱을 지나고 내 여자친구들은 각각 비슷하고 다른 고통에 몸부림쳤다. 견딜 수 없이 서럽고 화나고 슬퍼졌다. 왜 이렇게 되고 마는 거야? 왜, 일곱 명이나 괴로운 일을 겪어야 하지?


내가 이들의 고통을 감히 옮길 수는 없다. 감히 공감할 수도 없고, 심지어 위로조차 못 하겠더라. 한 친구의 담담하게 꺼내는 말을 들을 때는,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기까지 견딘 시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말문이 막혔다. 고생했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가까스로 찾아낸 문장들을 읊조렸지만 이게 과연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일까 확신할 수 없었다. 저 짧은 문장으로 일축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닐 텐데.


글로 적고 있는 것조차 의심스럽다. 이들의 고통을 하나의 글감으로 단순화시켜버리는 건 아닐지. 쓰면서도 이걸 과연 발행할 수 있는 글일까, 확신할 수 없다. 나한테는 이 글을 쓰고 공개해야 하는 권리와 자격이 없다. 그런데 그냥… 세상이 아름답다며, 사는 게 너무 좋다며 태평한 소리나 해댄 지난 글들이 원망스러워서 적어내려간다. 나는 내 친구들의 하루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한 사람이라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두고 빗발치는 바이러스 사이로 날렵하게 피한 사람이라고 그랬다.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고통이 딱 그래보였다. 사회적 고통이 비 오듯 쏟아지고, 우린 그걸 속수무책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덜 괴로웠다면, 그건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가 회사에 있던 3년을 무탈하게 보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감사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정상이어야 하는 상태를 운이 좋아야 누리고, 유난히 감사해야 하고, 이게 맞나?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그마치 일곱. 무력한 숫자다.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일곱씩이나… 그런데도 이게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여성의 권리와 보호를 외치면 페미라며 비난할 수 있는 것인가.


이 글은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엄청난 무례이고, 친구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일 같다. 써야만 할 것 같은 느낌과, 쓰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충돌한다. 그 혼란에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이 글을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요청도 할 수 없다. 차마, 읽으면서 너희가 더 아파할 글을, 내가 쓰겠다고 너희한테 그렇게 허락을 구해…


하지만 동시에 말하고 싶은 욕구를 짙게 느낀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고생과 고난이 너무나 슬프고 화나는데, 이 날카로운 감정을 도무지 내 몸 안에 남겨둘 수가 없어서 바깥에 털어놓고 싶다. 어디까지나 전해 들을 뿐인 내가 이런데, 너희들은 어땠을까? 삼킬 수도 뱉어낼 수도 없어서 머금고만 있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까만 건 글이고 하얀 건 여백인 편평한 세계에 깊고 까마득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압축해버려서 미안하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데 대변인이라도 된 것마냥 신랄하게 떠들어댄 것도 미안하다. 잘못된 사람이 대신 말한 나머지 잘못 전달되었을 수도 있는 오류의 가능성도 미안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써야겠다.


이 글은 심히 이기적인 글이다. 행동을 촉구하지도 않고,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않으며, 그저 고통의 토로에 그친다. 그마저도 자격 없는 화자의 발언이다. 게다가 이 글을 올리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올리겠다는 변명과 핑계로 가득하다. 비판도, 비난도, 분노도 수용하겠다. 난 도무지 소화할 수 없어서 털어놓고 싶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가한 충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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