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는 카세트 테이프로 자장가를 틀어주셨다. 나와 동생이 누우면 엄마는 잘 자고 좋은 꿈 꾸라는 애정 어린 인사를 잔뜩 건넨 다음, 조용히 음악을 틀어주고 거실로 나가셨다. 우린 고요히 흐르는 음악을 따라 잠에 빠졌다. 매일 똑같은 테이프를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곡 중 기억나는 것은 딱 세 곡이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
쇼팽의 녹턴 2번
이 곡은 여전히 내 자장가 플레이리스트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들어도 옛날과 같은 아늑함을 선사한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때의 안전한 무지를 떠올리게 한다. 가족과 학교라는 작은 세상이 전부였고, 보호 받는 것이 당연해서 그 어떤 것도 부딪히지 않아도 되었던 때가 떠오른다. 이 곡들은 항상 아무 걱정 없이 안심하고 잠에 들라며 속삭인다.
음악은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 첫 기억이 이 자장가들이고, 두 번째는 학창 시절 들었던 곡들이다. 당시엔 한 곡만 무한히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어서, 그때의 음악을 들으면 당시의 냄새와 기분이 음악 속에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낀다. 예를 들어, 윤하의 ‘봄은 있었다’나, 에일리의 ‘저녁 하늘’, 써니힐의 ‘Goodbye to my romance’ 같은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의 특징은 한동안 밀도 있게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 거들떠도 보지 않기 때문에, 훗날 우연히 마주쳤을 때 당시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마치 냉동 보관한 것처럼.
오늘은 써니힐의 ‘Goodbye to my romance’를 우연히 들었는데, 전주의 피아노 반주 소리에서부터 숨을 들이켰다. 열여섯살 봄, 그때의 파릇파릇한 기억이 잔뜩 떠올랐다. 심지어 가사도 절묘하다.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는 그때 그 시간들’… 이 곡은 당시 내 상황과 잘 들어맞아서 특히 열심히 들었는데, 1학년이던 내가 3학년 선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그 선배가 농구한다는 내용까지 똑같았고, 가까워질 가능성이 전무해서 멀찍이 바라보는 청승을 은근히 즐겼던 것도 비슷했다.
옛날 노래는 종종 더듬어줘야 했다. 바래면서도 선명한 기억을 들춰보고, 빠른 세월에 대한 무상함도 느껴야 하니까. 가끔 알고리즘에 의존해 랜덤으로 곡을 재생해보면, 기억 속에 깊숙이 묻혀 있는 노래들도 끄집어내줘서 예상치 못한 옛 기억이 갑작스레 찾아올 때도 있다. 샤이니 발라드를 들으면 밤에 몰래 PMP로 인터넷 소설 읽으며 울고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아이돌 댄스곡을 들으면 매주 일요일 4시마다 성실하게 인기가요를 시청한 기억이 떠올랐다. 노래는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내 기억과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있었지.
치매에 걸려도 노래는 잊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학적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음악의 강렬함은 실감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어렸을 때 본 만화의 내용은 죄다 잊어도 주제가만큼은 줄줄 외운다. 이전 글에서 말했던 ‘다!다!다!’도 오랜만에 보니 스토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주제가를 듣는 순간 열정적으로 따라 불렀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디지몬 노래랑 나루토 노래는 꼭 열창하는데, 이들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노래는 같은 시절을 지나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서로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같은 노래를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넘겨왔다는 동질감은 생각보다 진하다. 어느 날은 학교 축제에 윤도현 밴드가 와서 ‘사랑했나봐’를 부르는데, 02-04년생들이 빠짐없이 떼창하는 모습을 보고 남몰래 찐한 친근함을 느꼈다. 너희도 아는구나…? 나 조금 젊을지도…?
학부를 졸업한 뒤로는 국내 대중가요를 잘 듣지 않는다. 옛날 아이돌 노래에 난리법석을 피우던 아이는 이제 없다. 요즘 케이팝은 죄다 똑같고 시끄럽다며 시니컬한 평가만 남기는 노잼 어른만 남았다. 어쩌면 이제 낭만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모두가 함께 즐기는 노래에 대한 낭만을… 소녀시대랑 인피니트가 컴백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할 정도인데, 나중에 마흔 언저리에 이십대 후반을 회고할 노래가 없으면 어떡하지? 난 요즘 프렌치 키위 주스를 듣는데… 누가 공감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