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꽤 무거운 내용을 쓴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페미니즘이든, 젠더든, 다양성이든, 그냥 뭐 인생이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탐구하고 파고드는 것이 당연했다. 통념을 들여다보고 뒤집으면서 뭣이 중헌지 고민해보는 일은 즐거움을 넘어서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왜 죄다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인지 불만이었다. 왜 나는 꼭 벌어먹고 살기 어려운 분야만 고르느냐고. 돈 때문에 서러웠던 기억도 적지 않은데, 돈을 추구했던 적도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지.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만 수백 번은 했다.
IT 업종에 종사하는 친구 L이 있다. L은 컴퓨터인지 소프트웨어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하는 개발의 어떤 영역을 공부했고, 일도 하고 있다. L이 그랬다. 자기는 실용성에 주목한다고. 오로지 잘 활용할 수 있어야만 관심이 간다고. 그 말이 굉장히 놀랍고 생소했다. 나는 실용성에 주목한 적이 없는데…? 실용성이 중요했던 적이 없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냥 중요한 것. 정의, 평등, 뭐 그런 거? 내가 추구하기엔 너무 거대한 개념이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가 없는 삶의 중요한 가치랄까…
그 친구는 내가 쓰고 말하는 것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은 익숙했다. 다른 친구에게서도 들었다. 깊숙이 생각하기에 고달픈 일이라고, 일부러 외면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할게! 왜냐면 나는 할 만하거든. 나는 재미 있거든.”
나는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버겁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면, 버겁지 않고 엄두낼 수 있는 내가 하는 게 맞았다. 내가 할 일이었다. 나는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만 생각하면 에너지를 느꼈고, 내 활기를 잔뜩 담아 꺼내놓고 싶었다.
유튜버 허휘수가 어느 예술가분을 인터뷰할 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예술가는 세상을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자기가 느끼는 걸 표현할 책임이 있다고.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내가 남들보다 세상을 민감하게 느끼는 지점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면 난 그걸 표현할 책임이 있다.
난 IT 쪽은 엄두도 못 낸다. 얼마 전에 파이썬이 어떤 툴이 아니라 언어라는 걸 처음 이해했다. 물론 그게 언어라는 걸 이해했다고 해서, 어떻게 쓰는 건지 파악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면 그 일은 나 말고 L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게 맞다. 실용성을 추구하고 디지털 감각이 있는 사람들. 나는 산수에 약하다. 그럼 회계처럼 숫자를 다루는 일은 숫자에 능한 사람들이 하는 게 맞다.
세상의 정교함에 놀란다는 게 이런 때다. 사람은 어쩜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되어서 세상을 속속들이 채우고 있는 걸까? 역할을 부여받은 것처럼… 단체로 팀프로젝트 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사랑했던 위인은 코코 샤넬과 레이첼 카슨과 이사도라 덩컨이었는데, 각자 내 인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키워드와 맞닿아있다. 관심사는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다… 난 자연스럽게 기울어졌으니까.
난 그렇게 세팅된 것처럼 언제나 언어 앞으로 나섰다. 항상 마음 속에 떠오른 말을 바깥으로 꺼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종종 참아내야 할 정도로. 성격과 흥미가 형성되는 과정은 미스터리하지. 난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것 같은데. 물론 늙어가며 더 확고해질 뿐이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말하고 써야지 다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