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주의에 대한 회고

by 희량

친구랑 얘기하다 보면 나이 들어가면서 아량이 넓어져감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내보였던 것들도, 어느 순간 수긍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생각보다 뻣뻣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네 싶은 깨달음들이 있다. 그렇게 유들유들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살면서 격하게 반대해온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대주의적인 태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태어나고 거주한 국가를 자랑스러워 하며 살아가는데, 우리만 배알도 없이 다른 나라를 치켜세우기 바빠보였다. 우리는 매번 가진 것의 가치를 몰라보고, 지키지 못해 빼앗기는 역할만 맡는 것 같았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복을 등장시켰을 때, 우리가 한복을 지키고 잇고 개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돌이켜봐야 했다. 그들의 잘못이 분명하지만, 한복이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라고 자랑스럽게 외치고 관심 가진 적이 있었나.


그래서 나는 지극히 사대주의적인 우리나라가 부끄러웠다. 전통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지키지도 못하는데 서구의 산물은 그렇게 훌륭하다고 높이 치켜세우고 따라하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국악은 재미 없고 클래식은 고상한 것처럼. 그러나 약간의 연륜으로 넓어진 마음은 살짝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힘의 차이 앞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닮아가고 싶다는 욕망은 좀 순진하고 솔직했다.


지금까지 사대주의적인 사람을 거의 혐오하다시피 여겨왔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부러웠던 게 아닐까. 우리나라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진국을 선망하고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겼던 거겠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모로 여유로운 서양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과 문화는 성공한 국가의 표상처럼 다가왔겠지. 어떻게 탓할까. 누군가는 손흥민 보고 그의 유일한 결점은 국가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우리의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는 두번 강조해도 아깝지 않은 것 같다. 정작 손흥민은 우리나라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월드컵에서 그렇게 나라를 위해 간절히 뛰었을까? 그래서 더 자랑스럽지 않나. 그가,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열심히 응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뜽귱이 호주에 가서 이란 사람을 만났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까 “이란, 더 베스트 컨트리” 이랬다고 한다. 자기 나라가 최고라고 우기는 저 근거 없는 자신감, 닮아볼 만할 것 같다. 나고 자랐다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애정. 맹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꽤 의리 있는 행동 아닌가! 다른 나라를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나고 자란 이 땅,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 땅의 문화를 애정하는 것이 우선하는 것이다. 거기서 자신감도 출발한다고 본다. 내가 딛고 선 뿌리, 지나온 배경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건, 깊은 자기애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가진 전통의 가치에 집중하고,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알아봐주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한복의 정신과 구조와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었으면 좋겠고, 한국의 음악 아티스트라면 국악에 박식하고 애정 어린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고,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흐나 피카소보다 국내 예술가를 더 존경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엔 혐오할 만한 특징도 많아서 매번 이게 나라냐며 욕을 달고 살지만… 난 솔직히 이민 가고 싶지는 않다. 이게 얼마나 눈물 겨운 애정인지 알아줘야 한다. 특히나 요즘 뉴스 보면 칼부림에 성폭행에 괴롭힘에 이십대 여성으로서 너무 위협적인 사회인데. 그런데도 이 땅에 정 붙이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갸륵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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