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by 희량

내 글이 참 부끄러울 때가 있다. 뿌듯함과 부끄러움을 자주 오가는데, 좋게 말해 부끄러움이지 대놓고 손가락질하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가 있다. 어쩜 이리 부족하냐면서… 어제는 뜽귱한테 어떤 글이 너무 좋아서 공유해줬는데, 육성으로 감탄하더라. 내 글에는 그런 감탄 안 해줬으면서. 알 만하다. 내 글은 그런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쯤은 똑바로 자각하고 있다.


매일 조금씩 써서 근육을 키우고자 했다. 나날이 쓴 사람만 단련할 수 있는 문장력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장인만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은 숙련도로부터 나오기도 하겠지만, 그간 쌓아온 시간이 그 자부심을 더 단단히 구성하고 받치니까. 감히 장인이라 칭하기엔 새파란 어린애지만,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시작해보려 했다.


그런데 진짜 쓰기 싫다! 내가 자처한 평일의 습작(이라 쓰고 평일의 고생이라 부름)이지만, 참 쓰기 싫다. 평일의 습작을 다짐할 때만 하더라도 글쓰기가 노동이라는 걸 실감하고 싶다며 숭고한 목적을 내세웠지만, 마주한 건 지독한 현실이다. 매일 두 시간 가량은 문장을 연달아 고민하고 뱉어내야 했다. 언제나 놀고만 싶어하는 스스로를 자리에 앉히고 글을 쓰게 하는 건 생각보다 고생스러웠다. 꼭 써내야만 하는 약속에 내 시간과 노력을 속박했다.


글쓰기가 노동이라는 말은 매일 글을 마주하는 사람만 말할 수 있는 아름다운 노고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하기 싫은 마음을 참고 하는 것이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러 몸과 마음을 글 앞에 데려다 놓아야 하는 일이었다. 신성한 것처럼 묘사해봤자 결국 매일을 지겹도록 마주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 노동은 그저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자, 절대 포장할 수 없는 날것이었다.


고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날 책상 앞으로 데려다놓을 수 있는 건, 앞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감탄을 자아내는 문장들을 계속해서 빚어내면서 나를 자극하는 사람들. 그 문장들이 발하는 빛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아무래도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밑줄을 쫙쫙 그을 수밖에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싶어진다. 손글씨로 적어두고 고이 보관해두고 싶은 문장들을. 글을 욕심내고 싶었고, 노동의 글쓰기를 실감하게 되면 욕심낼 수 있는 자격이 생길 것 같았다.


하기 싫다고 발라당 누운 주제에, 욕심이 난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이 괴리란… 어쩌면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이 괴리를 어떻게든 좁혀보는 것일 테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뭉근한 노력이다. 세지 않게, 하지만 끊이지 않고 꾸준하게. 싫증 난 마음과 욕심나는 마음 사이에서 꾸준함을 택하는 일은 어렵다. 서른 편이 넘는 평일의 습작을 쓰는 과정에도 포기와 도주와 외면을 속삭이는 무수한 목소리를 겨우 삼켜냈다. 앞으로도 습작을 쓰는 일이 고되고 지난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면 노동이기에 뭉근해질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활활 타올라 순식간에 꺼져버리지 않고, 그렇다고 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작은 불씨의 따뜻함을 이어가는… 숯 같은 느낌! 그래, 노동은 숯이다.


업을 선택하는 것은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만남도 아니고,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순정도 아니다. 오직 하나뿐인 거룩한 삶의 목표도 아니고, 배신 따위 없는 의리 있는 사이도 아니다. 업은 종래에는 하기 싫어지고, 노는 것보다 절대 즐거워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열망하게 되는 일이다. 시선이 자꾸만 가닿는 나머지, 나태한 마음을 재촉하고 달래게 되는 일이다.


퇴사 이후로 계속 글만 쓰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본업인 학생으로서 논문을 쓰든, 부업으로 자잘한 글을 쓰든 하루하루를 쓰고 적는 행위로 채우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내 얼굴이 편안해보인다고 한다. 나도 내가 짓는 표정이 가뿐함을 느낀다. 하지만 친구들이 “재밌어?”하고 물으면 “아니. 재미없어.”라고 답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이건 부정할 수 없었다. 동시에 덧붙인다. “근데 할 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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