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화와 합리화

by 희량

지난 글들을 둘러보는데 내 글에 자기연민이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글에서 스스로를 신랄하게 비판하다가도 결국 합리화로 마무리하는 흐름이 보였다. 비판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면죄부를 부여받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이렇게 내 문제를 아니까, 안아주세요. 인정해주세요. 나를 옹호해주세요. 지지해주세요. 계속 무언가를 요청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객관화가 너무나 매끄러워서 고통 받는 절 보세요.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나는 종종 학창시절 말 잘 듣고 커리어를 위한 길만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이 얼마나 얕은 내면을 갖고 있고 삶에 결핍이 많은지 얘기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본 결과였다. 미래를 위한 준비만 할 줄 알지 오늘의 식사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 몇 편의 글을 통해 계속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마음 한 켠 진득하게 붙어있는 진심을 고백하자면, 난 여전히 살림에 관심을 기울일 의향도 의지도 없다. 귀찮으면 한 끼 대충 넘기고 마는 태도를 어떻게 억지로 일으켜 정성스럽게 식사하도록 만드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그 다음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나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구나. 나의 결핍과 미흡을 인지하면서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생각을 마무리한다. 그 안타까움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 태도다.


나는 무섭도록 비겁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합리화에 능하고, 그래서 어떤 침잠하는 자기혐오로부터 너무도 가볍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냉정하게 비판하다가도, 결국 합리화로 마무리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객관화와 합리화를 넘나드는 스스로가 더 청렴한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부족과 미흡을 가리키진 않을 거라고도 믿는다.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자기확신이라면 확신이었다.


하지만, 자기합리화를 합리화한 김에 더 나아가보자면, 아예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나름 요리도 한다. 며칠 전에는 가지구이도 해봤고, 감자조림도 해봤고, 각종 파스타도 해봤고, 두부 동그랑땡도 해봤다. 조금씩 채식 요리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중인데, 꽤 만족스럽다. 설거지도 친구 불주먹의 추천으로 효율적이고 재밌기까지 한 방법을 찾았다. 어쩌면 자기 비판 - 합리화의 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움직여볼 마음이 어느새 자리잡은 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건 뜽귱과 함께였을 때이며… 혼자일 때는 늘 움직임보다 가만히 있음을 선택하고 마는 고도의 게으름은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말하고 싶은 건, 사람은 바꿔쓰는 거 아니라지만 찔끔찔끔 바뀌긴 한다는 거다. 바꿨다고 느낄 만한 눈에 띄는 변화가 있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것뿐이지. 아, 바꿔쓰는 건 아니긴 하다. 스스로 바꾸는 게 포인트니까. 저 문장에서 불가능이 가리키는 단어는 ‘바꾸다’가 아니라 ‘쓰다’였을지도. 내 본질은 여전히 게으른 사람이고, 이걸 바꿀 생각도 없어서 타협하고 변명하고 합리화하지만, 객관화와 합리화를 치열하게 오가는 것이 아주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거라면 지금까지처럼 사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자기합리화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느슨한 사람을 존경하지만, 누군가의 잠재적 비판을 미리 기대하고 그로부터 잔뜩 웅크려 있는 날 더 다그치고 싶진 않다. 이 마음 또한 심각한 자기연민의 산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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