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거실에 눕다시피 앉아서 윤두준을 비롯한 세 명의 남자가 태국으로 여행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굉장히 맛있어보이는 태국 음식을 먹길래 나도 태국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들이 갔던 이름도 없는 노포를 언젠간 꼭 가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와 함께 구글 맵을 뒤져서 결국 찾아내고 말았다. 엄마가 “겨울에 갈래?” 하고 넌지시 말을 꺼내주셨지만, 나와 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학생 신분이 되었다니까 이모들이 조금 심란해하셨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엄마한테 장학금으로 방어하지 그랬냐고 말했다. 그동안 원망하지 않았던 나의 신분이 돈 앞에서는 초라해졌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홀가분한 기분도 잠시, 모아둔 생활비는 충분함에도 노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소비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날 위로할 만한 탁월한 구실은 “난 적어도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마음 속에서 자주 들리던 목소리인데, 뜯어보면 부실하기 그지없다. 글에서야 다양성도 이야기하고 인권과 환경도 고민하지만, 어떤 적극적인 운동을 펼친 것도 아니며, 매끼 비건을 실천하는 것처럼 일상에 변동을 가져온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스스로의 깜냥을 불가피하게 수용한다는 듯한 태도에 불과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일상을 보내다 보면, 정의고 인권이고… 이런 숭고한 가치는 남 주고, 내 삶의 풍요나 챙기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욕구는 여러 번 느낀다. 뜽귱과 맛있는 식당에 가서 실컷 외식을 하고 싶어질 때, 가족들과는 한번도 가지 못한 해외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친구와 호화스런 펜션에서 깔깔대며 하룻밤을 보내고 싶을 때. 이 모든 생활을 누리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명제이지만, 고상한 척하느라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다.
부에 관심 있는 편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많이 벌어도 럭셔리 브랜드 제품엔 소비하고 싶지 않았고, 강남 땅에 한 자리 꿰차는 일이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그러나, 부의 정의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여유라면 부정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였다. 그래서 가끔은 풍요를 영위할 자금을 위해 긍지 같은 거 키우지 않고 패션 기업에 홀라당 취업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거대한 기업을 소매업으로 지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옷을 만들고 팔고 버리는지는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해버리는 거지. 패션 산업의 사회적 이슈를 꼬집으며 글을 쓸 땐 언제고.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변명은 얼마나 초강력한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걸.
한국사를 배울 때, 결연한 독립운동가들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나라면 나설 수 있었을까. 과연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와 그들과 함께하는 행복보다 공동체를 위한 선택을 더 우선시할 수 있을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소시민의 부르짖음을 담은 현대시에 눈길이 갔던 걸까.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내 마음에 선명히 박혀있다. 자신이 옹졸하고 비겁하다고 고백하는 시를 읽고도 스스로를 변화시키겠다 확신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킬포…
글을 쓰겠다고 호연장담했지만, 눈 앞의 물질에 쉽사리 흔들리는 게 내 다짐이었다. 요즘 부쩍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특히 그렇다. 아직 졸업 후의 진로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열어두었지만, 나 정말 취업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정희진 작가님이 삶과 세상을 고찰하며 쓴 글을 그렇게 찬양하고 닮고 싶어했으면서, 그래서 먹을 거리와 이동 수단 외에는 지출이 거의 없다는 그의 삶을 존경하면서… 진짜로 취업해버릴지도 모르겠다. 한다고 쉬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