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 생활

by 희량

우리 가족은 전국에 흩어져 산다. 서울과 경상도와 전라도. 무엇이 우릴 동서남북으로 갈라놓았을까 보면 각자 사는 데 집중했을 뿐이다. 가족과의 거리는 서로를 더 애틋하게 해주지만, 떠나올 때 콧등이 시큰한 마음은 당최 갈무리할 수가 없다. 쇠구슬 같은 슬픔이 마음에 차츰차츰 내려앉는다. 크진 않지만 무게만큼은 무시하지 못하는 슬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가족과 떨어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싶어진다.


동서남북에 떨어져 사는 우리가 만나는 곳은 청주다. 본가가 있는 곳. 청주를 지나는 고속도로와 도심 사이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 청주에 도착할 때마다 만나는 반가운 곳이자, 청주를 떠날 때마다 지나치는 아쉬움의 길이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무성한 풍경이 아름다워서 더 반갑고, 더 슬프다.


객지 생활을 8년째 하는 나한테 집이란 개념은 굉장히 애매한 편이다. 집을 정의하는 말이 최대의 평안과 아늑함을 주는 공간이라면 본가가 맞다. 하지만 생활의 흔적이 가득하고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분투한 공간이라면 서울의 집이다. 둘 다 아늑함을 선사하지만, 각자의 부족함을 머금고 있다. 어느 곳도 온전한 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가끔 씁쓸하다. 왜 여느 사람들처럼 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 가족은 약속을 잡고 행사처럼 모여야 하는 걸까. 매일 지지고 볶은 나머지 소중함을 잠시 잊게 되더라도 일상을 함께하고 싶었다. 만약 싸움이 난무하더라도 흔한 투정처럼 지리한 일상의 한 단면이 될 것 같아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왜 서울을 고집해야만 했을까 싶다. 내가 상경한 이유는 오로지 학벌 때문이었으나, 학벌은 대놓고 자랑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특히 학벌로 개인을 정의하지 않는 게 정의롭다 여겼기 때문에 대체로 입을 다물고 다녔다. 학교를 줄세우지 않는다면 내 상경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서울에 올라온 대가가 여유를 잃고,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을 알고,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잃은 거라면, 서울행은 과연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게 맞나.


그러나 이미 8년을 쌓아온 서울 생활은 가족을 떠나온 슬픔만큼이나 서울이 내게 이로웠다고 말한다. 시야가 트였고, 생각을 넓혔고, 많은 곳을 디디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의 집약된 교육과 문화와 정치를 누리며 부정할 수 없는 서울의 시민이 되었다. 서울은 잃을 것도 얻을 것도 많은 도시였다. 친구들 덕분에 외로운 순간만큼은 없었으니 객지 생활 중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이었다.


한편으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는 시점에 다다랐다고도 생각한다. 여전히 서울을 객지라 부를 만큼 정을 붙이지도 않았지만, 서울 시민임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서울과 밀착된 것이 사실이다. 본가와 서울집을 구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전국을 누비며 가족을 만나러 다니는 일이 피곤스럽지도 않다. 집 떠나 고생하는 컨셉이 내 정체성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만날 때마다 헤어져야 하는 애틋함을 끌어안아야 하겠지만, 더 자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겨울엔 떵이랑 목포 여행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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