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투쟁을 조롱하고 짓밟은 경찰, 서울교통공사, 삼각지역 직원들. 여러분 모두 나중에 나이 들고 약해져서, 혹은 장애를 갖게 되면 꼭 지하철 엘리베이터 이용하십시오. 꼭 활동 지원 서비스 이용하십시오. 절대 시설 가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사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온 우리를 짓밟고 모욕한 오늘을 꼭 기억하십시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지하철 시위 중 발언한 말이다. 이슬아 작가님과 안담 작가님 토크 콘서트에 가서 알게 되었다. 두 작가님은 이토록 우아한 저주는 처음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이걸 꼭 글에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명 읽지 않는 초라한 글이더래도 기록을 반복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회자되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가끔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떠올릴 때면, 중요한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속으로 우겼다. 내 글이 얼마나 편협해질 수 있는지, 어떤 단면만 비추게 될 수 있는지 몰랐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협소한 글들을 썼다. 내가 수용하고 이해한 세상만 적어냈으니, 나라는 사람 바깥으로 확장할 수 없는 글이었다. 내 글의 장점은 지적과 고발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의 감춰진 흉터를 가리키고 비춰내기에는 부족했다.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응급실 청소 노동자, 공장의 경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이 있다. 작고도 커다란 이야기의 모음이다. 또, 다음 독서모임을 위한 책은 옛 소련의 장소를 구석구석 찾아가며 전쟁에 참여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알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청하고 탐방했다. 내가 생활하는 범위 안에서, 내가 사고할 수 있는 만큼의 생각을 담아내는 내 글은 얼마나 작고 협소한가.
중세 판타지 서사를 보며, 나는 언제나 음유시인에게 끌렸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음악으로 소식을 전하고 대중을 계몽하는 그들은 자유로운 정치가였다. 민중은 음유시인을 통해 정세를 알았고 각자의 의견을 구성했다. 목소리를 전하는 자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가. 내가 글을 쓰고자 한다면 가져야 하는 사명은 이런 것들이다. 중요한 이야기를 자꾸만 듣고 전하며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며 연구가 이어지듯이, 끊임없이 더하고 더해진 이야기를 세상에 띄워보내는 것이다.
아직 글쓰기가 업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지점에 서있다. 왕초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를 평가하고 재단할 누군가의 시선을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검열했고, 급진적인 표현과 생각들은 없는지 다듬었다. 선명한 주장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초보이기에 더욱 겁없이 외칠 수도 있는데. 어제 예진님이 모든 주장은 저지할 수 없다고,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용기를 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내용이 누군가를 옹호할 수 있다면, 단순한 반복이더라도 중요한 메시지를 퍼뜨릴 수 있다면.
지하철역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울려퍼진 목소리. 모두가 서두르는 일상을 막아서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 이동을 위해 지어진 장소에서 이동이 박탈된 존재가 외치는 목소리. 내가 존경하는 두 작가님이 세상을 살게 하는 말이라며 이 목소리를 소개했듯이, 나도 기꺼이 메아리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