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

by 희량

삶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하다. 서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고, 유별난 결핍 없이 자랐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쉽게 감동해버리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도 내가 사랑 받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믿는 종교도 없는데, 어떤 불가사의한 곳에서조차 날 사랑할 거라 생각했다. 나의 모나고 부족한 부분까지도 인간적이기에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정말로 그랬다.


이 무의식을 깨트려준 건 꼬마비 작가의 만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신이 사람이 아닌 개구리를 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왜 인간만이 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 묻는다. 인간이 세상에 저지르는 모든 일들을 돌이켜보면, 인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못된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서로를 위하고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일 수가 없었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인간이 협심하고 공존하여 살아가는 것 또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임을 말한다. 우리의 존재가 진화의 결과라면, 생존에 성공한 개체에 그친다면, 신이 인간이 아닌 개구리를 살리는 이야기는 그리 이상하지 않다. 인간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지 묻는 질문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꽤나 괴로운 생각이었다. 내가 아메바와 다를 바 없다니.


나의 나르시즘을 깨달았다. 인간으로서의 내가 특별하다고 여겨온 무의식적인 믿음이 들통났다. 근거 없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몹시 서글퍼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애써왔는데, 내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라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정된 죽음은 삶을 허무하게 만든다. 삶의 끝 너머에 무한한 정적만 있다면, 이 찰나 같은 삶이 아쉬워서 어쩌지. 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나는 욕심쟁이였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에 처음으로 공감했다. 어차피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상상하고 기대하리라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우리에게 기나긴 삶이 허락되었다고 믿으며 살아가듯이. 그러나 나는 수많은 종교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만다.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종교가 있을까? 왜 인간이 특별한지, 또는 인간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아메바도 천국에 가는지, 공룡도 천국에 있는지…


자아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는 꽃밭만 들어찬 머릿속과, 예쁨만 받고 싶은 철부지 어린 애 같은 점을 버려야 비로소 삶의 절대적인 법칙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존재와 죽음에 대해 고심하느라 유독 힘들었다. 그동안 구독해온 유튜버 암환자뽀삐 님의 죽음이 꽤나 충격이어서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동안 그 유쾌한 웃음을 자주 바라보았었는데.


살아있음에 집중하려 한다. 일단 지금 살아 있는데, 죽음에 대해 골몰한다 하여 무엇이 바뀌나. 공포는 마음의 기저에 깔려 있지만, 덮어놓는다. 오늘은 논문 초록을 써야 하고, 주말 동안에는 발표 3개를 준비해야 하니까. 그리고 요즘 초가을의 산들바람이 기분 좋고, 친구의 여행을 사진으로 전해 보고, 귀여운 동생과 영상 통화를 하고, 애인과 간지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추석엔 가족의 품에 안겨야 하니까. 찐하게 감사하며 살아야지. 밤도 무서워진 나에게 보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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