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희량

나를 잘 돌보겠다는 다짐은 어찌나 얄팍한지. 난 또다시 못된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있다. 싱그럽고 정성스럽게 먹는 일은 어렵다. 특히나 음식까지도 공장에서 나오는 시대에서는.


잘 먹고 잘 자라는 말만큼 상대의 안녕을 빌어주는 인사가 있을까. 잠을 자는 일과 밥을 먹는 일은 매일 반복해야 하는 흔하디 흔한 일상이지만, 삶을 이어가는 토대다. 나는 건성으로 대하는 일이지만, 정성을 다해 챙겨야 하는 일이다. 잘 산다는 게 별 건가, 결국 웰빙은 배를 채우고 숙면을 취하는 원초적인 즐거움으로 수렴한다.


나는 잠에 대해서도 인색했다. 항상 불규칙적으로 잤고, 수면 시간을 줄이는 것도 쉬웠다. 하루 정도 잠을 미루고 세 시간 정도 쪽잠을 잤다가, 다음 날 몰아서 자는 일들이 허다했다. 수면 부족이 날 괴롭히진 않았다. 일어날 때는 힘들지만 일상을 시작하다 보면 어려움 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수면은 마음대로 줄였다 늘리기 만만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잠을 잘 자고 있다. 최대 여섯 시간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일곱여덟 시간으로 늘렸다. 알람을 맞춰두지 않고 본격적인 숙면을 취하려 했을 때 7시간 30분 가량 자는 듯했다. 이렇게 또 내 몸의 패턴을 알아간다. 이십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때깔 좋은 수면을 취하기 위해, 잠에 들기 전에 휴대폰을 잡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대신 머리맡에 시집을 두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에 알쏭달쏭하더라도, 한국어가 이렇게 예쁘고 다채로웠나 감탄하며 읽고 있다. 문장을 밤참처럼 꺼내 먹는 느낌이랄까. 명확히 다가오지 않아도 더듬거리며 심상을 그리는 재미가 있다. 열 편 남짓의 시를 읽으면 서서히 잠이 온다. 내가 보통 자기 싫어하는 이유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홀로 상념을 이어가는 시간이 괴로웠기 때문인데, 시집은 그 시간을 줄여주었다.


집에 세 권의 시집이 있다. 곱씹으며 읽지 않아서 며칠 밤이면 금방 한 권이 끝나버리는데, 그래도 같은 시집을 여러 번 뒤적거리겠다고 다짐한다. 잠들기 전 차분하게 세상과 사람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게 마음에 들었다. 밤과 잠이 두려운 마음도 달래준다. 아무래도 몇 권 더 사야겠다. 우선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부터 사고, 김선오 시인의 작품도 읽어야 할 시집 목록에 적어두었다. 지금은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널 사랑하고>를 읽고 있다.


시인의 이름을 하나둘씩 외워가는 것이 뿌듯하다. 아, 정확하게는 동시대의 국내 여성 시인을 점점 여러 명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흡족하다. 이상과 백석과 김수영을 외웠던 국문학도는 알게 모르게 여성 시인의 목소리에 굶주렸었나.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하는 시집에 여성 시인의 이름이 점점 빼곡해지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다. 내 책꽂이에도 하나둘씩 늘려가며, 밤의 정적을 채워야지!


…라는 글을 자기 전에 끄적였는데, 바로 오늘 늦잠 때문에 지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던 발표를 못했다. 요 며칠 잠을 충분히 자서 날 칭찬하던 중이었는데, 오늘은 너무 많이 자서 꾸중해야 한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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