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by 희량

얼마 전부터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소중한 친구의 선물로 <정희진의 공부>를 듣는다. 세계 최고의 팟캐스트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버스에서 듣다가 박수 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희진 작가님의 책을 보며 여러 번 감탄해서일까, 작가님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활자로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세상에 우뚝 서 계셨음을 비로소 피부로 느꼈다. ‘책방오늘’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런 감동이 없었다. 책방을 소개해준 친구는 열망 어린 목소리로 울프의 녹음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난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마 그 친구는 버지니아 울프를, 나는 정희진 작가님을 비슷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나 보다.


팟캐스트를 듣는 일은 어색했다. 청각에 집중하는 행위는 내 삶에 드물었다. 음악을 감상할 때도 가사는 흘려보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진 않는다. 오히려 음악이 촉발하는 감정에 몸을 맡기는 편이랄까. 하지만 팟캐스트는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한다. 눈앞에 어떤 장면이 지속적으로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귀로 들리는 이야기에 시선이 향하도록 애써야 한다. 꽤나 힘들었다. 몇 번씩이나 작가님 말씀을 놓쳐서 되감아 들었다.


내 생활이 시각중심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읽고 보는 행위에 더 익숙하고, 귀를 활짝 열고 기울이는 일이 드물다. 악기를 연주하는 순간이 아니었다면, 청각에 정성 들여 집중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세상이 그렇다. 특히 디지털이 지배한 공간은 더욱 시각중심적이다. VR과 AR, 가상현실을 시각을 배제하고 구성할 수 있는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권력이다.


정희진 작가님은 천천히 말씀하신다. 나는 유튜브도 5초씩 넘겨가며 내용을 빠르게, 그리고 대충 파악하는데 팟캐스트는 그럴 수가 없다. 말씀하시는 속도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급한 마음을 애써 갈무리해야 한다. 정희진 작가님은 원래 말씀이 빨랐는데, 일부러 천천히 말하려 노력해오셨다고 한다. 속도는 정치적인 문제라고. 건강 약자와 장애인을 배제하기 쉽고, 또는 외국어에 서툰 사람을 앞에 두고 빠른 속도로 외국어를 말하는 경우는 배려의 부족을 넘어선 조롱과 모욕에도 가까울 수 있다고 하셨다.


정상성에 대한 환상과 권력으로 구성된 세상은 협소하다. 이 좁은 세상에 익숙하게 적응한 나도 이 시스템에 일조하는 중이다. 우린 언제쯤 넓어질 수 있을까? 문명의 발전이 이토록 쌓였는데, 그동안 넓어져오긴 한 걸까? 조금씩 변화해왔다고 믿고 싶은데, 배제의 구조는 너무나 거대하고 굳건하다. 인류의 끝을 예견하는 현대에서 평등하고 포용적인 세상을 건설할 시간이 충분할까? 어쩌면 그 건설의 과정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과 일맥상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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