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by 희량

어렸을 때, 한밤중이면 뜻 모를 공포를 마주할 때가 있었다. 이유도 알 수 없고, 형체도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럴 때 바깥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곤 했다. 실체가 있는 현실을 느끼고, 모호한 두려움을 쫓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밤의 어둠을 응시하다 보면 두려움이 찾아온다. 어렸을 때처럼 바깥의 생활 소음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예전과 같은 안도감은 찾아오지 않는다.


종종 살아있다는 게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라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럴 때면 나의 생존이 기적 같이 느껴진다. 나는 왜 끝이 두렵지, 고민해보면 글쎄 모르겠다. 정희진 작가님이 죽음을 수용하려면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아무래도 자의식 과잉이다. 내 존재의 의미를 자꾸만 찾는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천문학의 치읓도 모르면서 나무위키를 얼마나 뒤져댔는지 모른다.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주의 시작과 끝도 뒤졌다. 결론은 절망적이다. 팽창하든 수축하든 우주도 언젠가 끝을 맞이하고 말 거라니. 더욱 무의미하지 않은가? 허무는 짙어질 뿐이었다. 천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학문의 규모를 어떻게 감당할까? 우주가 나고 자라는 억겁의 시간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압축해 보다 보면, 우린 그저 우주의 먼지뿐이라는 사실만 거듭 깨닫게 되는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죽음 이후를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내가 여느 위인처럼 무엇을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고, 무엇을 남겨야만 의미 있는 생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온몸을 다해 외쳐놓고 싶다. 내 인생에 가득한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었다고. 그래서 모든 끝이 아쉬워 미칠 지경으로.


세상엔 미련 남을 것들 투성이다. 드라마 속에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볼 때, 노을 진 하늘을 보며 검정치마 노래를 들을 때, 어둑어둑한 밤 공기와 새소년 노래를 들을 때, 푹신한 이불의 감촉을 느끼며 널브러져 즐기는 웹툰 감상 시간, 애인과 붙들어 껴안고 가만히 서로의 애정을 느끼는 시간, 가족들과 함께 TV 앞에 모여 다같이 한 곳을 바라보다 한 마디씩 얹는 순간, 친구와 거리에서 박장대소 하느라 차마 걸음도 못 옮겼던 순간, 친구가 보내준 사진에 파릇파릇한 풀과 분홍빛 코스모스들, 울창한 숲과 파란 바다의 냄새,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목도할 때마다 느끼는 행복과 감사.


삶의 무용함을 파고들수록 어떻게든 나의 존재를 유의미하게 만들고 싶어진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겠지만,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모두의 염원에 아주 조금 기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어딘가에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다. 역사 속에 사라진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서 현대를 만들었을 테니까.


창문 바깥을 내다 보면 열심히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떻게 이 허무와 무용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건 살기 위해 죽음을 망각했기 때문이었다. 혹은 끝이 있기에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며 끊임없이 위로해야 하거나. 죽음에 대해 골몰한 이전과 이후엔 차이가 없었다. 내일과 다음주와 내년을 고민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주도 언젠가 사라진다는 세상이지만, 아니 우주의 끝을 걱정하기 전에 기후변화부터 인류의 끝을 경고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존재했다고 말하면 철없는 소리일까? 손과 입에 피도 묻히고 죄도 많이 짓고 있지만, 선악을 가를 수도 없다. 우리는 울림이 있는 노래를 불렀고, 따스한 손길로 끌어안았고, 웃음과 울음을 나눌 줄 알았다. 그렇게 서로를 주고 받으며 세월을 쌓고 결실을 피워내고 도전하고 시작하며 살았다. 이런 감정을 우주에 두둥실 띄워놓고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이 찰나를 아주 의미 있게 보내고 가는 거다. 존재만으로 선명하게 흔적을 새긴 셈이다. 우린 멋지게 살았다.


삶을 왜 불태우고 사라지는 촛불에 비유하는지 제대로 깨달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불사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사랑, 애정, 우정, 여유, 열정, 휴식, 배려… 내가 아끼는 모든 가치들을 열심히 불사르고 태워야지. 축복 받은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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