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by 희량

배우 갤 가돗이 인스타그램에 이스라엘과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쳐다볼수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또 내가 눈과 귀를 닫고 있었던 걸까? 뉴스를 찾아보았다.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에도, 무자비한 공격이 쏟아졌다. 두 지역을 합하면 사망자가 1천여 명이 훌쩍 넘는다. 마침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서는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었단다. 음악과 웃음과 활력이 가득한 축제의 장면을 떠올리니 죽음의 소식이 참담하기만 하다. 공격을 결정한 자들은 그 생명의 무게를 이해할까? 죽지 않았더라면 하루하루 행복이 쌓여갔을 그 묵직한 삶들을.


나에게 전쟁은 역사였다. 교과서에서 배웠으니 당연하다. 우리나라가 지나온 과거였고, 20세기 곳곳에 위치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냉전과 오일과 테러라는 키워드로 묶일 뿐인 추상적인 대상이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 전쟁의 물리적 존재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계 곳곳에서는 온갖 전쟁과 내전이 끊이질 않고 있다지만, 우리는 주변의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사실에 더 주목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스마트폰으로 중계되는 등 21세기 문물과 얽히며 그 현재성이 더 도드라졌다. 전쟁이 더 이상 역사가 아니게 된 순간이었다.


요즘 전쟁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기억을 기록한 책을 읽고 있다. 무수한 죽음과 폭력을 목격하고 살아돌아온 이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 책에는 전쟁이라는 거시적이고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상황 속 개인이 마주한 비극을 보여준다. 전쟁은 곧 개개인의 비극이 무수히 모인 비극 덩어리다. 날 특히 울게 한 것은 필사적으로 적군을 살리려 애썼던 간호병 이야기, 부상당한 적군과 부상당한 아군의 피가 서로 섞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하늘이 파랗고 풀꽃이 예뻤다는 이야기다. 국적은 사람을 가르기 위한 것인가,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


그래서일까, 배우 갤 가돗이 이스라엘을 위해 올린 게시글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갤 가돗은 이스라엘 출신이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 때문에 평소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이스라엘의 편을 들고 응원하는 그의 모습이 싫었다. 결국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슬프게도,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한국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국민 정체성보다는 생명 존중 사상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싶은데, 왜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


국회의원 장혜영은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참담한 마음으로 고통 속에 죽어간 이들을 애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친구를 잃은 슬픔에 함께합니다. 현지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합니다. … 확전은 공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어떤 정체성도 없기에 편을 가르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단호한 마지막 문장이 자꾸 맴돈다. 확전은 공멸.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


얼마 전 여의도 하늘에서 불꽃축제가 펼쳐졌다. 자꾸 무언가 쾅쾅 터지는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고 알아챘다. 불꽃이 타오를 때마다 남서쪽 하늘이 밝아졌다. 자꾸만 밤하늘 아랫쪽이 번쩍번쩍 노란빛으로 빛났다. 위화감이 들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온갖 매체에서 돌아다니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모습과 비슷했다. 저 폭파의 장면은 전쟁의 모습과 닮았다. 또한 저 폭파의 소리는 전쟁의 소리가 아닌가?


모두가 폭파와 살생과 죽음에 대한 역치가 낮기를 바란다. 그래서 작은 폭죽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기를, 작은 죽음에도 가슴이 미어지기를, 전쟁이란 피와 눈물을 떠올리며 차마 일으킬 수 없는 것이기를. 수없는 싸움과 전쟁을 거쳐 현재의 세상이 도착했지만, 그 과정에서 끝나버린 삶은 돌이킬 수 없다. 이번 중동의 충돌이 잠잠히 지나가기를, 냉혹한 겨울이 오기 전에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종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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