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알겠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훌륭하고 짜임새 있는 글을 볼 때면 그렇게 부러우면서도, 막상 기다란 글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다. 한 문장도 겨우 떠올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무수한 문장을 이어 문단을 만들고, 장을 채우며, 어엿하게 엮어낸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내가 글쓰기를 피할 수 없는 건 내 생각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MBTI에서 외향성(E)이란 것은 이런 뜻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게 아니라, 내 감정과 생각과 느낌을 모조리 바깥에다 꺼내놓고 싶어하는 것이다.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죄다 까발리고 싶어한다. 나의 모든 방향은 나의 밖을 향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쓸 수밖에 없다. 안에서 만들어진 것을 자꾸만 꺼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무형의 내면을 유형의 무언가로 빼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언어는 얼마나 얄팍한지 내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 매번 실패한다. 말과 글은 내 마음보다는 유한해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런 수단을 가지고 최대한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고민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자꾸만 말문이 막힌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긴 글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내면은 중구남방으로 튀어나오니까.
그동안 글쓰기가 재미있고 행복한 것처럼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역시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쓰기 싫어 발버둥쳐왔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이게 업이 되는 과정일까? 아직 글쓰기는 내 생계를 책임지는 수단도 아닌데 진저리 치는 법부터 배웠다. 아직 그럴 자격도 없는데 미리 앓는 소리부터 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나는 속으로 느끼는 이 막막함을 털어놓아야 하기에 적는다.
평습이 어느새 하루하루 해치워야 하는 업무와도 같아졌다. 문장에 대해 여러 번 고심하고 반질반질 닦아내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바래졌다. 평일에 다섯 번,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이라는 약속을 지켜내기 위한 의무에 집중할 뿐이다. 노동에 쫓기다 보면 목적을 잊는다. 입사 전에는 간절하다 입사와 동시에 싫어지는 회사처럼. 원하는 건 가지는 순간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다는 말은 매순간 좋은 점을 상기하려 노력해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 반복되는 노동의 지겨움은 삶을 형상화하는 공식과도 같다. 일상은 원래 끝없이 반복되기에 다행스러우니.
이제는 책을 가볍게 읽진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확신에 찬 문체와 친절한 구성을 보면 열등감과 막막함이 가득 피어오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 친구라면, 난 ‘오엑’하는 소리와 함께 토하는 시늉을 떨며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이렇게 희화화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가벼운 고통이긴 하지만, 오늘 아침 오랜만에 잡은 책을 10장도 넘기지 못해 닫아버리고야 마는 내 모습이 슬펐다. 이 매끄럽고 예리한 책을 사랑하지 못하고 벅차하는 게 슬펐다.
하지만 글쓰기가 싫지도 않다. 아무래도 이 애증의 감정은 두 발을 모두 담가버렸기에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껏 학교에서는 복수전공을 하고, 회사에서는 퇴사를 염두에 두며 한쪽 발을 빼놓고 빠져나갈 기회만 엿보았다면, 이제는 도망칠 곳이 없다. 슬슬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더는 찍어먹기만 할 수 없음을 안다. 진심이 되어야 해서, 더 괴로워졌다.
한 분야에 머무르기 시작하면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이를 체감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를 풍미하는 매체인 유튜브에 눈길을 힐끔힐끔 주다가 결국 거두었는데, 영상의 세계 또한 나름의 깊이를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의 세계가 가진 깊이도 벅차서 허우적대는데, 또 다른 세계는 어떻게 감당하겠나. 한곳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나의 자리도 깊이 뿌리내릴 거라 기대하며 이어가는 수밖에. 나보다 앞선 훌륭한 글들을 선망하면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