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무지

by 희량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행동, 느꼈던 마음을 이제는 직시하고 털어놓으려 한다. 이건 나의 소심함 또는 자신 없음, 더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비겁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엄마의 오랜 친구가 본가에 놀러오셨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하시며 대게집에 데려가주셨다. 열심히 맛있게 대게를 먹어치우던 중 이모가 페미니즘 관련된 얘기를 꺼내셨다. 내 망각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탓에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너는 이런 걸 생각하며 사는구나?” 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정도였던 것 같다. 난 차별과 혐오와 불평등에 대해 열심히 답했다. 이모는 혐오가 어디 있냐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열심히 반박했다.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을 최대한 문장으로 구성해서 전하고자 했다. 그러자 어떤 시선을 느꼈다. 이모의 뒷편, 저 멀리 대각선 방향으로 남자 종업원 둘이서 이쪽을 쳐다보며 쑥덕이고 있었다. 앳돼 보였는데. 그들은 간간이 킥킥거리기도 했다. 당시엔 젠더 전쟁이랄까,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남자와 여자가 공격적으로 대립하던 때였다. 난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은 어제의 재미 있있던 일을 대화했을 수도 있지만, 그 시선과 웃음은 대게를 다 먹고 집에 갈 때까지 계속 떠올랐다.


그때의 일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언제부터인가 내가 바깥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때 발음을 흘려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마치 해리포터의 세상에서 볼드모트를 발음하지 못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아, 정말이지 페미니즘을 입에 담는 것도 당당히 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다. 반박 당하는 것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페미니즘이 뜨겁게 확산되던 그 시절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도 그만큼 컸다. 나도 그때부터 페미니즘을 알고 배워나가기 시작했으나, 단호하고 확실하게 페미니즘을 외치진 못했다. 메갈리아를 반기지도, 욕하지도 못하며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페미니스트가 되긴 되었다. 난 그들처럼 급진적이지 못하기에 그들도,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며 넓은 아량을 자랑하곤 했다. 동시에 그들의 비윤리적인 발언은 옹호할 수 없다며 도덕적으로 올바른 척 했다.


그러나 한 논문에서 마주친 워마드의 게시물은 내 콧대를 한 방에 무너뜨렸다. 이 사이트의 이용자들은 당시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모하고자 했고, 어김없이 흐지부지 넘어가려는 대한민국에서 이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하철 광고를 준비했고, 새벽에 국화꽃을 두고 가는 집단 행동을 기획했고, 강남스타일이 해외에서도 유명하니까 해외의 시선을 유도해보자며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와 텍스트는 온라인에서 꾸준히 퍼지며 하나의 밈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노력은 그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까지 확산시켰다.


이들은 심지어 백래시가 심했기에 논의가 커질 수 있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성 혐오를 인정 받고 공감 받았다면 국내 페미니즘 담론이 확산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백래시로 인해 더 많은 여성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페미니즘을 알아갔던 거라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전략적으로 행동하기까지 했다. 감정적으로 밀어붙이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이들은 진심을 다해 싸웠다. 그 진심의 무게를 이제서야 가늠해 본다.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했나. 내가 선 곳은 애매하기에 고상한 척 굴 수 있었나. 난 행동에 참여할 만큼 충분히 분노하지도 않고, 충분히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걸까. 페미니즘은 내가 뜨거워질 수 있는 주제이면서도 한없이 겸손하게 되는 주제다. 난 참 뭘 모르고, 무엇이든 자만하기에. 하지만 나의 당사자성이 페미니즘을 자꾸 쳐다보게 만든다. 우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부터 또박또박 말하고, 내 생각을 숨기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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