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by 희량

요즘 뒤늦게 알쓸인잡을 시청 중이다. 매번 감동의 물결을 이기지 못해 눈물 지으며 보고 있다. 이번에는 빛을 비추기 위해 어두운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울었다. <인비저블>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세상이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분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임무에 실패했을 때만 존재가 드러난다. 보통 지하철을 떠올릴 때 사람이 운전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철 왜 안 와.”라며 지하철이 스스로 움직이는 양 표현한다. 그러다 가끔 거친 운전이 느껴질 때, 여러 번 브레이크를 나눠 밟느라 사람의 손길이 눈에 띄게 느껴질 때, 비로소 기사님의 존재를 떠올린다. 원망이 섞인 인지다. 부드럽게 나아갈 때는 자기부상열차처럼 여겼으면서.


알쓸인잡에서는 이들을 ‘공동체의 틈새를 메꾸어주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이 유지된다. 거리의 쓰레기를 싣고 유유히 떠나가는 미화원 분들, 눈이 오는 날이면 누가 볼세라 얼른 제설작업을 해두시는 분들. 해외로 확대하니까 또 많다. 내 노트북 반도체에 필요한 금을 캐느라 광산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들, 석유를 뽑고 있을 사람들…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려낼수록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우주에 가는 상황을 가정한다.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는 때가 되었을 때,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우주로 인류가 이동하는 시점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때 우주선에 꼭 태워야 하는 사람으로 거론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누구를 태워야 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패션 공부하는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좋은 세상을 위해 묵직한 일을 하고도 싶은데, 요놈의 패션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이토록 덧없고 사치스러우며 상업적인 분야가 이토록 생존이 중요한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부터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패션의 존재 가치가 언제나 의심스럽게 때문에, 패션을 파고드는 나의 존재 가치도 의심스러운 마음이다.


우리 연구실 교수님들은 “인류의 운명을 바꿀 만한 연구를 내놓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인류의 운명을 우리가 어떻게 바꾸냐고. 우린 그저 비즈니스로 바쁜 기업과 브랜드를 대신해서 정리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내 역할이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보다 더 듬직하게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으니. 먼 미래에 우주선에 태우는 사람들을 발표한다면, 아마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로 구성되지 않을까. 어떤 광물 전문가와, 잠수함 운전수와, 배관공과…


알쓸인잡에서는 법의학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특정한 장소에 서서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하고 있을 사람을 생경하게 비추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미나 작가님도 과학철학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분야에 서서 넓은 세상을 향한 대화를 꺼낸다. 패션을 학문으로 공부하면서 내가 서 있는 공간은 정말 좁아졌지만, 여기서 작은 나의 역할을 꾹꾹 쌓아가는 것이 이 커다란 세상에서 조그만 빈틈을 메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왕 패션에 감탄하게 되었으니…


놀랍게도 평일의 습작은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나에게로 귀결되는 특징을 가졌다. 자아고찰과 나르시시즘 사이 어딘가를 오가는 것 같아 이래도 괜찮은지 걱정이 많았으나, 한창 나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라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로 고민은 끝이 없으니! 석사를 공부하며 박사 과정에 호기심을 키우는 중인데,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주목 받지 않고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얼마나 중대한지 깨달았다. 나도 구체적인 장소에 서야지. 그리고 작은 일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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