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드라마 <위쳐3>의 두 번째 파트를 시청했다. 각색과 연출의 실망스러움과는 별개로, 순수히 감탄했던 장면이 있다. 시리가 사막에서 말(유니콘)을 만나고 함께 걷는 장면이 오랫동안 나오는데, 시리는 목마름과 굶주림과 더위 속에서도 말 위에 절대 올라타지 않았다. 심지어 함부로 만지려 들지도 않았다. “만져봐도 되겠니" 물으며 손을 뻗고, 말이 고개를 돌리자 손을 거두었다. 시리와 말이 사막을 나란히 걷는 장면은 인간과 동물의 동등한 관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아이러니하다. 싸움과 살해의 장면을 유독 자세하고 잔인하게 묘사하는 작품 속에서 동물에 대한 존중을 표현할 수 있다니.
예전에 <겨울왕국2>에서 엘사가 말을 타는 모습을 보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엘사는 말의 형상을 한 정령이 날뛰자 결국 고삐를 채워 ‘길들였다'. 그 정령은 작품 내적인 의미에서도, 시각적 모습에서도 자연을 상징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인간이 자연에 고삐를 채우는 과정으로 나타났다.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사용해도 된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 같아 불편했다.
동물을 도구로 써온 역사는 얼마나 유구한가. 우린 언제부터 동물을 타고, 먹고, 입어왔을까.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일이었을 거라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 여겨도 정말 괜찮을까?
지금은 풍족한 시대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의 탄생을 계획하고, 도살과 수확의 시기도 결정한다. 먹이사슬이라는 자연의 고고한 법칙 덕분에 우리의 살생을 정당화할 수 있지만, 이 시대에서만큼은 끊임 없는 문제 제기가 필요한 듯하다. 기술의 발전이 워낙 날카로워서, 필요 이상으로 죽여대기 때문이다. 또, 죽음의 현장이 숨겨지고 소비로 탈바꿈해 학살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된다. 인스타그램이 일상화되니 반려동물 인플루언서가 등장했다. 이 동물들은 아주 귀엽고 예쁘게 꾸며져서 사진을 찍힌다. 어떤 강아지는 벤츠의 광고를 찍기도 하고, 남성복 모델이 되기도 한다. 이 유명한 강아지들의 모습은 여러 형태의 굿즈에 담겨 전 세계에 판매된다. 어제 수업에서 교수님은 한 마디로 정의하셨다. “도구화.”
아, 생각지도 못했다. 이 강아지들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중이었다. 자본주의의 세상은 동물조차 상품화했었지. 집 근처의 동물을 파는 가게가 떠오른다. 쇼윈도에는 2층으로 된 케이지가 늘어서 있고, 작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힘 없이 늘어져 있다. 이들을 판매하는 사람은 생명에 가격을 매겨 놓고 유통을 대가로 돈을 받는다.
우리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은 인간이 모든 자연의 우위에 있고, 그래서 자연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 무의식적인 시각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이들이 선망하고 이삼십 대 성인도 애정하는 순수한 엘사조차 자연을 길들이고 말았으니.
나도 어제 고기를 먹어놓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