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급증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초조해진다. 당장 오늘에도 어떤 일로 죽을지 모르는 것이 사람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서 그런 것일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 말투, 표정에서 언뜻 우울감이 비치는 경우도 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사람 좋은 사람 같았는데... 어쩌면 그와 평생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나도 모르게 상상은 진행되어 사실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 그는 어느덧 죽은 사람이 되고 나는 절친을 잃은 사람이 되고 만다.
나는 밤잠을 설치며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내가 했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포옹이라도 한번 해줄걸. 그러면 뭔가 달라졌을 수 있었을 텐데. 응원의 한마디라도 건네볼걸. 그러면 뭔가 달라졌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 칭찬이라도 한번 해줄걸. 손이라도 한번 잡아줄걸. 무언가 해결 방안이 있진 않을까 좀 더 고심해 볼걸... 이래 볼걸. 저래 볼걸.
그러다 기적처럼 신이, 우주가, 혹은 어떤 무엇이 나타나 과거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한다. 한 가지 조건은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래 볼걸. 저래 볼걸. 수많은 생각 속에 그것들이 통할지 모른다는 일말의 자신이 있었지만 그 많은 생각들 중 현실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몇이나 될까? 과연 어떤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나는 최선이라 생각되는 일을 실천한다. 그러나 나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나는 다시 한번 신에게, 우주에게, 어떤 무엇에게 기도한다.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나는 다시 한번 최선이라 생각되는 일을 시도한다. 나는 또다시 실패한다
...
실패, 또 실패...
나는 상상 속에서 떠올린 수많은 해결책들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고안해 낸 '효과가 있었어야 할' 많은 방법들의 효과의 당위성에 대한 확신은 나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놓친 무엇이, 어쩌면 너무나도 사소한 것일 하나의 수가, 훗날 세상 다시 없을 미소로 나와 추억을 나눌 누군갈 지켜줄 것이다.
나는 정말 모든 수를 다 동원해 본다. 때리고, 할퀴고, 욕하고, 소리 지르고, 응원하고, 째려보고, 편지 쓰고, 훈계하고, 안아주고, 빌어본다. 모든 시도 끝에 결국 나는 좌절하며 깨닫는다.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건 정말 한정되어 있으며, 줄 수 있는 무엇 또한 어떤 시기에 전해 지는가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다면 그 어떤 마법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진정으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두 사람 모두에게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이미 부정과 냉소, 비관에 잠식당한 이를 그곳에서 꺼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내가 줄 수 있는 긍정과 희망, 낙관의 무언가가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전달되어 그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익명의 누구에게 쓰는 글이 그리하여 가장 거부감 없이 전달되기를, 가장 은밀하게 전달된 씨앗이 언젠가 찬란히 만개하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이 뜻 모를 초조함과 황당한 상상이 무한한 평행 우주 어딘가의 내가 기어코 찾아낸 단 하나의 수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