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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태용 Apr 24. 2024

시를 읽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반복되어 조금씩 낡아지는 기분이 들면 종종 시를 읽는다.

이 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시는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독(讀讀), 당신은 누구십니까.

마침표 하나 조사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

사소한 것 하나쯤 소홀히 해도 여전히 읽은 것이겠지만, 마음을 쏟을수록 시는 선명히 다가온다.

소리내어 읽어야만 들리는 무엇이 있고, 소리없이 읽어야만 보이는 무엇이 있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나의 마음이 가 닿는다.


시인이 써놓았지만 내가 읽는다. 읽는 것은 시인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이다.

역동하던 무언가가 포착되어 멈춰 있는 활자 속에 머물고 있으나 시인의 의지가, 검은 잉크의 무정함이 그 역동성을 차마 가두지 못한다.

나의 호흡 안에서, 나의 눈길 속에서 시는 유일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활자 밖에서, 지면 밖에서 시는 불완전하게 완성된다. 어떤 시도 완전하게 완성되지 않는다.

시인도, 나도, 활자도, 우리의 어떤 시도도 시를 완전하게 완성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가피한 불합리함이, 불합리함에 대한 믿음이 역설적으로 시를 읽어내려갈 용기를 준다.


완전하게 완성될 수 있는 시가 있다면, 나는 그 시를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의 이데아라고 할까 그 존재에 대한 환상 속에서 나는 소외된다. 나의 호흡이, 나의 눈길이, 나의 이야기가 더이상 어떠한 생명력도 불어넣지 못한다.

활자 속에 박제된 무엇이 더이상 역동하지 않는다.


나의 삶 속에서 나의 몫은 어디에 있을까. 영문도 모른채 삶은 내게 주어졌다. 삶의 수많은 것들 중 내가 선택한 것은 얼마나 될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인 삶 속에서 때로는 누군가가 답을 주었으면 할 때도 있다.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 운명인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영문도 모르고 주어진 삶일지라도 그것을 살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리라 믿는다.

산들바람, 봄내음, 아침햇살, 나무, 꽃, 신호등, 버스, 커피, 꿀물, 소금, 오늘, 내일, 음악, 소설, 그림, 사진, 물, 새소리, 새, 사람, 윤슬, 벚꽃, 산, 낙엽, 친구, 만남, 여름, 컴퓨터, 책, 연필, 건물, 초콜릿, 아이스크림, 로션, 지갑, 걸음, 숨, 가을, 사랑, 이별, 텀블러, 종이, 미래, 꿈, 희망…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역동한다. 내 안에서. 나에 의해서, 세상 가장 유일한 형태로. 드넓은 우주 영겁의 세월동안 한번도 없던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어느 하나쯤 소홀히 해도 여전히 삶이겠지만, 누군가 답을 알려주는 일이야 없겠지만, 나의 삶은 하루하루 불완전하게 완성될 뿐이며


불합리함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일 것이라 믿고 또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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