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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태용 Apr 29. 2024

민들레 한 송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자 독서 모임에 나가보았다. 내가 간 독서 모임은 한달에 한 번 총 네 번을 모이는 모임이었다. 첫 모임에 참석하는 길,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조금 설레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걱정도 하고, 그냥 집에나 있을걸 뭐한다고 독서모임을 한다고 했을까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여러 생각을 가지고 간 모임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혼자서는 미처 하지 못한 다양한 생각, 다양한 해석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마지막 모임날이 되었고, 우리는 야속하게 찾아온 마지막을 잠시 외면하고 여러 간식 거리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꼭 다시, 종종 보자는 약속과 함께 4개월 간의 모임은 끝이 났다. 모임을 마치고 나니 나는 우리의 첫 만남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 이렇게 친해질 것을 처음에 왜 그리 어색해하고 우물쭈물한 것인지. 잔뜩 긴장해 낭비한 시간이 아까웠다. 미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내려와,

'너희는 어차피 친해질 운명이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웃고 떠들어라'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또 다른 모임에 나가 나의 생각을 실천해보았다.

'이 사람들과는 어차피 친해질 운명이다. 처음부터 편하게 하자. 어깨에 힘 빼고, 긴장한 표정도 풀고,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하자.'

나는 나의 이 새 사고방식이 썩 마음에 들었다. 처음 본 사람들임에도 왠지 더 마음이 갔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이 편안했다.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기도 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에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기도 하며 한껏 이완된 마음으로 첫 모임을 즐겼다.


집에 돌아와 나는 환호했다. 언뜻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이 방식은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발표할 때, 노래할 때, 춤출 때... 긴장되는 어느 상황에서든 '이 사람들 어차피 다 친해질 사람들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그리 긴장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설령 긴장감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지라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긴장을 줄여준다는 실용성도 좋았으나, 다소 발칙한 상상이 결정적으로 나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낯선 이들을 어차피 친해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지인에게 이야기한다. 아이디어가 흥미로웠던 그는 아이디어를 한번 활용해보고, 이 아이디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의 지인에게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한다. 그의 지인도 이 아이디어를 한번 활용해본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끈질기게 퍼지는 민들레 홀씨처럼 그렇게 이 아이디어가 퍼져나간다.


어느날 어느 편의점에 들어간 나는 민들레 한 송이를 품고 있는 이를 만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에겐 구구절절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참 좋네요', 날씨가 안 좋으면 '날씨가 좀 안 좋네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민들레 한 송이.


이번엔 버스 안이라고 해볼까.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버스는 너무 답답하니까 말고, 비좁지만 지나다닐 수는 있을만큼 사람이 있는 버스 안에서 나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뒤에서 누군가 나를 치고 지나간다. 충분히 실수로 치고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란걸 알지만 한순간 짜증이 난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품겨 있는 민들레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짜증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든다. 나는 멋쩍은 듯, 내릴 곳을 둘러보기 위해 돌아본 척 연기한다.


이번엔 어디라고 해볼까.



지하철? 백화점? 길거리? 한강? 어디를 가도 민들레 한 송이 품은 이를 만난다. 구구절절 어떤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만의 암호인 듯 내보이는 민들레 한 송이.


온 세상에 민들레가 한 송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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