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임에서 만난 그는 말이 조금은 어눌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어딘가 어눌한 느낌인데 모자라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는데, 말은 논리정연했고 그가 사용하는 어휘에는 관습적이고 사전적인 의미 이상의 개인적인 해석이 담겨 있었다. 여러 어휘에 대한 그의 해석에는 수학도, 물리학도로서의 그의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어릴 때, 수학과 물리학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세상을 단순히 보이는 대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미분하고 해체하여 구조화했다. 항상 분석적인 사람은 따분하고 갑갑하기 십상인데 그의 경우, 그의 어눌한 말투와 분석적인 성향이 묘하게 어우러져 엉뚱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똑똑한 꼬마가 진지하게 세상을 분석하는데, 그 나이의 순수함이 의도치 않게 묻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고 들을 때, 혹시 이상하게 보일까봐 남몰래 미소를 숨기기도 했다.
그는 수학과 물리를 전공하고 프로그래머로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사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중이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지성 없는 돌덩이도 올바르게 학습하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지성을 갖춘 인간이 재능이 없다 하여 못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든 것이 계기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AI의 등장에 좌절하고 낙담하는데 이를 오히려 도전의 계기로 삼는 그의 맹랑함, 엉뚱함, 순수함, 용감함에 나는 미소 지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만남에 나는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좋았고,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었고, 그가 현재의 부족함이나 장애 혹은 한계에 좌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 있는 신념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굳이 꾸미거나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엉뚱함, 어눌함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검사도 했다고 했는데 뇌의 특정 부분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더라는 말을 무슨 게임 캐릭터 이야기하듯 웃으며 말했다. 너는 왜 그리 어눌하게, 엉뚱한 말을 하냐고 잔소리한다던 어머니 얘기를 들을 때는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비록 그는 웃으며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런 얘기를 웃으며 터놓을 수 있는 마음은 절대 하루아침에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흘린 눈물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끈질기게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뒤뚱뒤뚱, 촐싹촐싹, 올망졸망 나아가 저 강으로. 저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림이 보고 싶어 그림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아직 습작이라 조금은 쑥쓰러워하며 자신의 그림을 보여줬다.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사람의 그림으로 보이지는 않는 수준의 그림이었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펭귄 그림이었는데, 그러고보니 그의 외모가 펭귄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의 한 멤버가 펭귄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펭귄을 좋아하는 이유는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라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펭귄은 날지 못하는 새다. 언젠가 빛나는 태양이 그들에게 초대장을 건네주었으나 그들은 초대장의 사용법을 잃어버렸다. 버릴 수도 없는 그 초대장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종이 특정 기관을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퇴화된다. 그리고 퇴화된 기관은 장애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장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본래의 용도를 잃은 날개로. 바로 그 날개로 바다를 날았다.
그는 이런 펭귄의 모습이 세상을 미분하고 구조화하는 시선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논리적이고 연역적으로 공부하던 방식으로 이제는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는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의 본래 용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용도를 아주 폐기하지는 않고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에 맞게끔 활용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무언가를 무기력하게 장애로 전락시키는가. 가정환경이 어때서. 재능이 어때서. 외모가 어때서. 성격이 어때서. 직장이 어때서.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부족한 것은 인정하고 보완해가면서, 어떻게든 활용하고 있었다. 그에게 장애란 단지 마음에 있는 것이었다.
서울에도 펭귄이 살고 있었다.
조금은 어설프고 서툰 그가,
오랜 시간 흘려온 눈물로 이제는 가 닿을 수 없는 태양을 붙든
바닷속으로 저 바닷속으로
조금은 무거운 날개로
세상 가장 낮게 비상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