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여유로움을 향해 가는 중
노인의 삶이 전한 깨달음
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티로 공원에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담고 있는 것은 모든 어르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노인의 어깨에 얹힌 무게나 고단함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여유로움을 담고 있었다.
그 시작은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서 찍은 한 노부부의 사진이었다. 그들은 브라스 연주가 흐르는 구석에서 두 손을 맞잡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고, 그 사진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후 파리의 플리마켓에서 책을 뒤적이는 노신사의 모습, 베를린 꽃집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꽃다발을 들어 올리는 노부인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내 사진 속 노인들은 여유롭고 삶을 즐기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노인만 찍는 것이 아니라 여유로운 장면에 끌리고, 그 여유를 종종 어르신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했던 것 같다.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왔기에, 여유는 내게 결핍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여유로워 보였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괴리감을 느꼈고, 그 괴리감은 불편하게 다가왔다.
'유비무환'이라는 사자성어는 내 삶을 관통했지만,
그 원래의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피곤한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항상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며 완벽을 기했다.
10개를 준비하고, 회의 중에는 13번째 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것도 즉흥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준비된 자료들을 재조합한 결과였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으면 기쁨과 자기만족이 따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좋은 결과가 없으면 불안해서 그것을 메우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분명히 시작점이 다르다.
결과값이 같더라도, '좋은 결과'의 본질은 다르다.
과거, 불안을 해소하려 최선을 다한 나는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기쁨이 아니라 불안을 피하기 위한 디폴트값이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 나를 스스로 칭찬해 줄 일은 없었다.
기쁘지도 않았고, 자기 만족도 없었기에 자존감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걱정과 근심만 늘어갔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자신감이 생기지도 않았다.
지난 3년 간, 몸이 아프면서 인생의 off시즌을 겪었다.
과거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나는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몸과 마음이 오히려 건강해졌고, 고장 난 추는 균형을 스스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내과 치료를 어느 정도 마치고 체력 보강에 힘썼다.
그리고 앞으로 3개월의 여행길에서는 내 마음에 평안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했다.
'Protect my peace!'라는 말을 폰 바탕화면에 적어두고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는 누군가에게는 활기차게 느껴질지 몰라도, 나는 오히려 평화로움을 느낀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반짝이는 불빛 속에서도 차분한 선율을 느낀다.
2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