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한 반응

가해자에 대한 과학적 분석, 피해자에 대한 감정적 공감

by RayShines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이득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가 타인에게 선한, 혹은 악한 영향을 미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악한 개인이 없느냐고 한다면 그것 역시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는 분명 악의적인 인간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살인자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나 감상을 적으려는 글은 아닙니다. 다만 그 영화에 등장하는 악의적 인간들을 보고 느껴진 바가 있어 그것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악의로 똘똘 뭉친 인간을 사이코패스로 형상화합니다. 상대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인간을 도구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간, 그래서 살인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을 우리는 이렇게 부릅니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얼마나 많을까요? 사이코패스 선별 검사인 PCL-R을 개발한 로버트 헤어에 따르면 남성의 0.75%가 사이코패스라고 합니다. 어느 집단이든 2~3% 정도는 사이코패스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꽤 높은 비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잔혹한 범죄자나 연쇄살인범에 대해서 생각할 때 흔히들 프로파일러를 떠올립니다. 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프로파일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그럴 것입니다. 그래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 것입니다. 우리는 원인을 알면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결과 우리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매우 과학적,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은 흔히 쓰지 않습니다만 예전에는 “우리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썼습니다. 방임, 학대, 착취 등으로 인해 성숙한 인격을 갖출 기회를 박탈 당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이들이 타인의 가치 역시 폄하하게 된다는 의미였겠죠.


반면 우리는 피해자들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객관적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윤리적인 관점에서 분노를 느끼며, 이들에게 발생한 영원한 슬픔, 수치, 허무를 다루려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가해자에 대해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마치 과학이 가해자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설명에는 무수한 반례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부모를 둔 모든 아이들이 살인자로 자라나는 것은 아닙니다. 정서적 학대를 당한 모든 이들이 감정적으로 피폐해져 누군가를 아무 죄책감 없이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과학이 피해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설명일 뿐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재연될 수 없다면 그것은 인과성이라고 보기 어려우니까요. 인간은 어떤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의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여기에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분노할 수도 있고, 냉담할 수도 있고, 회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 흔히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사적 제재를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악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악의가 뇌의 어떤 부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저 악인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가해자의 아픔과 그것을 지켜보는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에는 너무 가볍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악의적 인간에게 그에 걸맞은 처벌을 가하는 자경단 활동을 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면 대리 만족과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2020년에 디지털 교도소라는 웹사이트가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흉악범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이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곳이었습니다. 뜻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이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을 털린 이들을 상당수가 자신은 그 범죄와 무관하다고 호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죄소로 등록됐습니다. 이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자는 마약 거래를 해온 30대 남성이었고 베트남으로 도피했으나 인터폴의 협조로 검거됐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는 반드시 악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면밀하고 신중한 검토를 통해 악을 식별한 뒤 처벌하고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와중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은 악에 대해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는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이 어떤 이유로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 박수받는 행동이 된다면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사회 유지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절한 방식으로 공분을 표현하여 시스템이 개선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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