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성공은 모두 노력에 의한 것일까요.
지금의 세상을 관통하며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명제 중 하나가 능력주의적 낙관입니다. 쉽게 말해 “누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능력주의적 낙관이라는 말이 실제로 있는 말은 아닙니다.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돈, 지위, 명예, 외형, 건강 등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들이 모두 개인의 노력의 산물이라는 주장입니다. 낙관은 아시다시피 상황을 희망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능력주의적 낙관은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와 낙관주의는 둘 다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둘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둘 다 무조건 좋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개인의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성공하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것,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오로지 개인의 노력에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만약 개인이 처한 사회적 상황이나 유전적 조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 역시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게으르고 나태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더욱더 큰 문제로 이어집니다. 탁월한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모든 이들을 그저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이들로 절하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낙관이 더해지면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해집니다.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도록 정해져 있는데 노력하지 않아서 당신도, 세상도 이 모양이라며 비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패, 패배, 포기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라, 당신의 사전에서 지우라는 명령은 능력주의적 낙관의 맹점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립니다. 노력과 집념은 분명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는 마법의 열쇠는 아닙니다.
개인은 분명 고유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개인이 노력을 해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DNA에 의한 구속입니다. 누구나 어떤 한계를 가집니다. 이 말로 한 개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한 개인은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한계를 가집니다. 자기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깨부술 수 있는 인간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나의 운명은 이렇게 결정되어 있다는 허무주의나 그저 모든 것에 체념하자는 패배주의에 빠지자는 내용은 아닙니다. 한 개인의 자신의 외연을 분명히 넓혀나갈 수 있습니다.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밀어낼 수 있습니다.
제가 경계하는 것은 한 개인의 성공이 모두 그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 것은 한 인간의 실패 역시 모두 그 개인의 탓이라는 믿음과 거의 동일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믿는 많은 창업자들, 억만장자들의 노력과 재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예로 빌 게이츠는 천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1960년대 초반에 시분할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성공에 분명히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요소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요소가 한 개인의 삶에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작용하면 그 반대의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세상의 잔혹함 앞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다시 일어날 수도 있도록 돕지 못한다면 최소한 잠깐 엎드려 숨을 고르고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물질적 성공에 너무나 경도되고, 한 인간의 성공 전체를 그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거리낌이 없어진다면 아마 우리의 주변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실패에도 그만큼 둔감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를 고립시키게 되는 게 아닐까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