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매체는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런 생각이 없이 머리를 비우고 보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영화, 소설, 음악 등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여러 매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매체들이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반면 이런 매체들이 우리에게 유희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었던 시절에는 무겁고 깊이가 있는 영화에 더 손이 자주 갔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복잡하고, 단선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영화 본연의 역할을 한다고 착각을 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감에 따라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세상은 영화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복잡하며, 참혹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픽션도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에 어린 시절에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의 무한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화보다 뉴스가 더 영화 같은 때가 많습니다. 영화 캐릭터보다 더 과격하고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실의 인물들도 있습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이 정말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곳인지, 그리고 개개인의 결정이 중첩되고 그것이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결행되면 얼마나 잔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자각하게 되면서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조금 느슨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가끔은 “그냥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고, 등장인물들의 선악이 불분명하고, 결말이 너무 열려 있으면 어떤 경우에는 그 자체가 피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세상은 이것에 더 가깝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다각도로 결부되어 있고, 선악과 무관한 결정들이 켜켜이 쌓이며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습니다. 장르로 치면 세상은 피카레스크에 가깝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다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지만, 2시간 정도 그 사실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흔치 않은 악의로 똘똘 뭉친 빌런을, 역시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정의의 사도가 때려눕히며 지구의 평화를 복원하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가 액션영화라고 분류하는 영화들이 많은 경우 이런 플롯을 따릅니다. 선과 악의 경계는 뚜렷하고, 세상은 한 사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선을 집행하는 주인공은 초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의심이 추호도 없습니다. 대척점에서 악을 행사하는 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념을 가진 둘이 충돌하지만 결국 선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줄거리가 저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은 아마도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키고자 노력하는 많은 가치들, 예를 들면 평등, 자유, 정의 등은 어찌 보면 세상의 혼란을 질서로 바꾸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움직인다고들 합니다. 세상을 그냥 두면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즉 이런 가치들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공명정대, 방종이 아닌 절제된 자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를 추구한다면 이런 가치들을 추구하겠다는 외침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구현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세상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우린 평등을 외치고,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정의를 외치고, 자유라는 개념이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외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자유롭지 않고 정의롭지 않지만 우리는 평등해야만 하고, 자유로워야만 하고,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