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 부정적 생각의 필요성

무분별한 낙관의 함정

by RayShines

매체들은 우리들에게 부정적 감정은 부정하라고 명령합니다. 긍정적 감정, 낙관적 생각을 갖고 끝없이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우리는 부추기죠. 좋은 게 좋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좋은 것만 좋다면 나쁜 감정은 왜 존재해 왔고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감정은 자연 발생적입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감정은 무조건 생겨납니다. 생각도 비슷합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 계속 떠오르면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말을 하기도 했죠.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과제에 도전해 보라. 그러면 그 짜증 나는 녀석은 매 순간 당신의 머릿속으로 파고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생각과 감정은 자연 발생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아주 큰 차이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주의를 동원하면 원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은 이럴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자”는 명령은 공허한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길 원하는지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감정은 완전히 통제 불능한 실체로 보이지만 한 가지 멋진 장점, 혹은 무자비한 단점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사라진다는 것,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라는 현자의 가르침은 감정은 덧없음, 동시에 영속적이지 않은 무엇인가에 너무 기대거나 매몰되는 것의 맹점에 대한 교훈을 알려줍니다.


좋은 감정도 영원하지 않으며, 나쁜 감정을 검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는 긍정 심리학, 좋은 생각 등 긍정에 대한 집착이 팽배합니다. 부정적 감정을 갖고, 부정적 생각을 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긍정적 생각과 감정을 갖지 않는 것을 직무 유기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진화의 퇴출 압력에서 살아남은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벌어줍니다. 온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일 때 우리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듭니다. 주식 시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 돈이 마구 몰려듭니다. 여기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제동을 거는 이들에게는 “비관주의자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시장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사람들은 쏟아붓던 돈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숙고하기 시작합니다. 긍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조금 덜 극단적이지만 같은 맥락의 일이 흔히 벌어집니다. 어떤 물건을 너무나 갖고 싶을 때는 그 아이템의 장점만 보입니다. 그 랩탑을 가지면 글도 더 잘 써질 것 같고, 강의 준비도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당장 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지요. 그런데 어떤 시점을 지나 긍정적 전망이 걷히고 흠이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숙고 단계에 들어가며 가격, 가성비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심한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은 크게 움츠러듭니다. 이는 사회적 활동, 직업적 활동에 제동을 겁니다. 그리고 이 자체가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잠정적인 약자 역할을 하게 합니다. 건강한 집단이라면 약자에게 온정과 배려를 베풉니다. 진취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면서 힘을 비축할 시간과 기회를 줍니다.


부정적 생각과 감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다 좋게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할 때 더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부정적 전망을 갖는 것 자체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항상 어둠 속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의 잠재력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 없이 그저 “긍정적 생각을 하고 좋은 기분에만 집중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무책임한 말일 수 있습니다. 분명 인간에게는 안 좋은 생각, 안 좋은 감정, 안 좋은 예감이 발생합니다. 이때 이것에 대해 한 번 정도 생각해 보는 게 그렇게나 나쁜 일이겠습니까. 무분별한 낙관은 무분별한 비관만큼이나 유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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