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가 불러일으키는 양가감정
어떤 감정을 가지라, 느끼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감정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억지로 생성해 낼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런 압력이 덜하지만 예전에 며느리들은 시댁에게 “마음으로 잘하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끔 “돈이 뭐가 중요해, 마음이 중요하지”라는 말도 많이 했었습니다. 물질적 가치보다 추상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우리 문화를 반영한 말이겠지요. 그리고 한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힘 중 하나인 효도를 응축한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으로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마음이 중요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누군가를 억지로 좋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생각, 감정은 매우 자연 발생적이고 저항이 불가능한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약간 비대칭성이 있는 같은데, 좋아하던 사람이 싫어지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인데, 싫어하던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에 비해 드문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에 어떤 것, 혹은 누군가에 대해 갖는 감정을 강요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감정을 명령하는 일이 매우 흔했고, 그것이 매우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슬퍼하는 이에게 “슬퍼하지 마라”, 울적해하는 사람에게 “우울해할 필요 없다”는 말을 너무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입니다. 그 말을 하는 일들은 그럼 자신의 감정을 스위치 켜고 끄듯이 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자생적이라는 특징 말고도 감정은 자연 소멸한다는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사라집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감정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듭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이나 애정은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서로 사랑하며 해로해온 부부들 역시 그들의 감정의 결이 바뀌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에 대한 감정은 어떤 한 가지 감정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상황에 따라, 관계의 질감에 따라 변화합니다.
감정을 마치 우리가 쉽사리 취할 수 있는 행동처럼 생각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갖는 것, 배우자의 부모에게 온 정성을 다해 효도하는 것을 책상 위에 놓인 유리병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서 까먹는 것과 동일한 노력이 드는 것이라면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 테니까요.
제가 보기에 어떤 특정 대상에게 특정한 형태의 감정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과제입니다.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강요할 수 없고, 부모가 자녀에게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효가 그렇게 당연한 것이었다면 굳이 효도라는 개념으로 명문화하여 그것을 국가 이념으로 설정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둬도 알아서들 다 효도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굳이 지키자고 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효는 실제로 효를 수행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이지만, 내 마음과 감정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이 중요하며 전부이다”라고 명령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는 효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니 어려움은 더 커집니다.
너무 건조한 접근일지도 모르지만 마음보다 더 동원하기 어려운 건 돈과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시간과 마음을 갈아 넣고 그것을 돈으로 치환합니다. 그래서 전 어떤 때에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것보다 돈을 주는 게 더 진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번 돈입니까.
물론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으며, 따뜻한 인사 한 마디가 용돈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마음의 강요가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 정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물질적 자원이 함께 움직이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