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는 이들의 세상, 영화 "얼굴"

아름다운 것과 아름다워 보이는 것

by RayShines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의 세상, 영화 “얼굴”을 보고 써보는 감상기입니다. 스포일러가 많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의 주인공은 앞을 보지 못하는 전각 장인 임영규입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 임동환은 아버지의 전각 공방을 운영하는 수완 있는 청년인 것 같습니다. 앞을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글씨를 새기는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던 중 그의 아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머니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습니다.


아래부터는 본격적 스포일러이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아 영정 사진도 없이 치르는 장례식장에 어머니의 여자 형제, 그러니까 동환의 이모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망자에 대해 “못 생겼다”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못 생긴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가 내연녀와 있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사정없이 때린 며칠 뒤 어머니의 패물을 훔쳐 집을 나가버렸다는 말도 전합니다. 장례식장에 왔다가 이 이야기를 들은 다큐멘터리 PD는 영규의 이야기보다 사라진 뒤 백골로 발견된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사건을 파헤칩니다.


영규의 아내인 정영희가 일하던 청풍 피복의 과거 동료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동료들은 그녀에 대해 괴물 같이 못생겼다, 변을 참지 못해 바지에 실수를 해서 똥걸레라고 불렸다며 망자를 조롱합니다. 그리고 당시 그녀와 함께 일했던 이진숙이라는 재봉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진숙은 자신의 사장에게 강간을 당했으며 영희에게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영희는 이를 폭로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비극이 시작됩니다. 당시 영희는 이미 영규와 결혼한 사이였습니다. 시장의 상인들은 영규에게 저런 절세미인이 영규를 좋아하니 다른 사람에게 가기 전에 얼른 결혼하라며 종용합니다. 앞을 볼 수 없었던 영규는 그런 상인들의 말을 듣고 그녀와 심성과 얼굴이 모두 고울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와 결혼하여 동환을 낳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규의 친구가 영규의 집에 들릅니다. 그는 영규에게 제수씨가 심성은 곱지 않느냐고 묻고 얼굴을 못 봐서 다행이라는 말을 합니다. 영규는 자신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반박하지만 이내 깨닫습니다. 시장의 모든 상인들이 자신을 속이고 조롱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영규는 어차피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부터 그에게 그녀의 얼굴 생김이 중요해집니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따스함에 대한 감사함을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녀와 세상에 대한 증오만 남습니다.


영규는 영희에게 사장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며 종용합니다. 하지만 영희는 영규가 자신을 사랑해 준 덕에 용기를 내어 옳은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항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네가 문제라고 해왔었는데 영규 덕분에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말은 영규를 격분하게 합니다.


정상적이라면 당신 덕에 내가 용기를 얻었다는 말은 찬사입니다. 그런데 장님이라는 이유로 일평생 조롱과 멸시, 무차별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던 영규는 영희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장님이라면 아름다움이 뭔지도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편견과 무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글씨를 새기며 그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여인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가 미추를 구분할 수 없는 자신의 약점을 세상에 더욱 깊이 새겨버리는 증거라는 것을 자각한 뒤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그녀를 살해합니다.


영규와 영희의 만남은 우리 모두가 그러하든 결함을 가진 둘이 만나 그보다 더 큰 무엇이 되는 과정일 수 있었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그 이면을 볼 수 없는 이들의 판단이 아니라, 앞은 볼 수 없지만 더 깊이를 볼 수 있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면 둘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영희의 사진의 등장합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증언과 달리 그녀는 “괴물같이” 못 생기지 않았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얼굴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느 거리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얼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왜 그녀의 언니들과 주변 동료들은 모두 그녀의 얼굴에 대해 못 생겼다고 말할까요.


그녀가 집에서 떠난 것도,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것도 모두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진실을 보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그녀는 불편하고 불쾌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아둔하리만큼 눈치 없게 사실을 외치는 그녀는 추한 괴물이 됩니다.


영규는 단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보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을 새겨 넣는 것에만 집착하며 진짜 아름다움이 획의 길이, 삐침, 굴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전각은 그대로 보면 좌우가 뒤집혀 있습니다. 종이에 옮겨졌을 때 비로소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 인간의 미도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저 보이는 것과 그 내면은 완전히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영규는 외피적 아름다움에만 집착합니다. 전국의 비석을 손끝으로 만지며 그 아름다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뒤 옮겨 새겨 넣으려고 합니다. 그는 진짜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창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복제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 아름다움은 돌이나 나무에 새겨져 있어 변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내를 삶에서 밀어내며 지옥에서 겨우 건져 올린 자신의 삶이 흩날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앞을 볼 수 있는 자, 그리고 평생 글을 읽고 써오다가 55세에 시력을 잃었던 보르헤스. 앞을 볼 수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 정말 아름다운 것, 정말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들이지요. 보르헤스는 눈이 멀고 나서도 구술을 통해 글을 썼습니다. 그의 글은 아름답고, 상상의 한계가 없으며, 짧지만 길게 남습니다. 지금 우리의 뜬 눈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아름다움을 흉내 내는 것입니까, 아름다움입니까. 눈을 감고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척하려 노력하고 있습니까, 아름다워지고자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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