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는 인간을 자유롭게 할까요?

노동 없는 세상

by RayShines

피지컬 AI가 대중화되면 인간은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고 로봇들이 생산해 낸 재화와 용역을 이용하며 더 고차원적인 활동에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도 정말 좋겠습니다만, 정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보는 것이 옳겠죠. 과연 노동 없는 사회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쓰인 것은 1922년 10월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 Karel Capek는 ”R.U.R Rossum’s Universal Robot”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상연했습니다. 여기서 로봇은 고대 체코어로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robota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연극에서 로섬이라는 과학자가 개발한 로봇이 인간 대신 노동을 하는데, 로봇에서 자의식이 주어지자 로봇이 자신의 주인인 인간을 살해합니다. 그들은 더 로봇이기 때문이 생식이 불가능해 절멸 위기에 있었으나, 고도의 지능과 기술로 이를 극복해 내며 한 쌍의 남녀를 탄생시킵니다. 새로운 아담과 이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볼 때가 많습니다. 경제적 자유, FIRE 같은 말들이 얼마나 유행인지를 생각해 보면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마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일을 고통스러운 것이죠. 고대 그리스어로 노동을 뜻하는 포노스 ponos는 슬픔을 의미하며, 히브리어로 노예는 일을 의미하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영어로 노동을 labor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labor는 고통이 수반되는 극도의 노력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어로 노동은 트라바이에 travailles인데, 이는 로마군이 사용하던 고문 도구 트라팔리움 trapallium을 어원으로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노동이라는 의미의 arbiet에서 왔는데 이는 중세 독일어로 시련, 박해, 역경, 곤경을 의미합니다. 이것만 봐도 인류 문명이 일과 노동을 고통으로 생각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 속성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하루에 8시간을 힘든 일을 하면서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입니다. 돈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뭔가를 생산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가 가치를 생산해 내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윤을 나와 공유한 뒤 내가 그것들이 생산한 가치를 조건 없이 사용하게 해 준다는 발상은 얼마나 유토피아적입니까. 그런 날이 온다면 누구나 콧노래를 부르겠지요.


인간에게 주어진 잉여 시간에 인간은 육체, 정신, 시간, 에너지를 써서 일을 하는 대신에 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과제에 집중하며 더 추상적인 가치를 생산낼 것이라는 장밋빛 예상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갑니다.


유한계급 idle class 혹은 leisure clas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가한 시간이 있는 계급이라는 의미입니다. 노예, 농노들이 고통스러운 노동을 해 발생한 과실을 조건 없이 사용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인간들 중 과학자나 학자가 된 이들은 많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이런 결과에 비춰보았을 때 지금 우리에게 깊이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또 다른 혁명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사에 기여한 과학적, 인문학적 발견을 했던 놀이하는 인간들, 호모 루덴스, 이 생존 가능했던 것은 놀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누군가 일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하는지 말입니다. 모든 이가 다 그렇다는 억측은 아닙니다만, IT 세상에는 인간을 창조적 호모 루덴스가 아닌 소비적 호모 루덴스로 만들만한 매체들이 홍수를 이룹니다. 숏폼, 게임, SNS, 드라마, 영화, 커뮤니티 등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을 때가 많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갑자기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이제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PC는 전부 치우고 창조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고 하며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을까요.


지금도 디지털 디바이스와 미디어들은 인간이 일하고 있지 않을 때 인간들을 정체시키고, 중독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미디어에 체류하는 시간이 곧 돈이고 데이터이기 때문이지요. 피지컬 AI 시대가 와서 로봇들이 인간의 일을 모두 대신해 준다면 지금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사라지고 인간들이 탐닉하던 미디어들도 함께 모두 사라질까요. 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피지컬 AI 시대가 도래해서 인간이 일을 하지 않게 되면 지적 기량과 신체적 능력의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때도 AI를 사용해 자신의 지성과 육체를 더욱더 날카롭게 갈고닦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정반대로 하루하루 정체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그것은 언제나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일을 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다면 누가, 왜, 어떤 동기를 갖고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할까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노동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인간의 삶에 규칙을 부여하고,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드물지만 자아실현의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규율, 목적, 동기가 없는 이들은 부유하며 표류하기 쉽습니다. 방황하는 인간은 감각에 집착하기 쉽고, 탐닉과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착취당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는 대신 정신적으로 종속된다면 그것은 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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