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상대성, 썸이 연애보다 좋은 이유

도파민 시스템은 쾌락을 상대 평가합니다.

by RayShines

쾌락의 정도를 가늠할 때 도파민이 흔히 등장합니다. 도파민이 기준선에서 얼마나 증가하느냐에 따라 쾌감의 세기를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파민에 의해 우리가 느끼는 보상의 크기에는 상한이 없을까요?


많은 경우 첫 번째가 가장 좋습니다. 첫사랑과의 첫 키스, 갈증을 참다가 마시는 맥주 첫 모금, 첫 번째로 산 내 차, 첫 번째 내 집에 들어가는 첫걸음, 처음일 때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이 범람합니다. 또한 강력한 감정, 개인의 연대기적 의미가 모든 첫 번째에 더해지며 우리의 기억에 깊이 각인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 처음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인연이 거듭되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모든 상대들이 비슷한 것 같고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허탈함도 듭니다. 맥주를 계속 마시면 어느 순간부터는 배만 부르고 더 이상 쾌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차, 집 등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것이 나에게 어떤 정도의 보상을 준다는 것이 학습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보상을 주는 활동이나 대상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기대에 더 집중합니다. 그래서 연애보다 썸이 더 설렙니다. 연애 자체가 아니라 연애에 대한 기대가 우리의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번 주말에는 맥주를 마셔야겠다는 계획과 기대가 나를 들뜨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도파민이 쾌감보다는 기대에 관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도파민은 쾌감에 관여하며, 그것이 습관화된 이후에는 기대에 더 크게 관여합니다.


도파민과 쾌감에 대해 우리가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도파민 시스템은 여러 행위들의 결과의 가치의 상대값에 맞춰 분비됩니다. 이는 우리의 도파민 분비 시스템에 명백한 상한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만약 상한이 없다면 엄청나게 중요하거나 강력한 자극에 대해서는 도파민을 무한정 뿜어내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도파민은 쾌락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도파민 시스템이 가늠할 수 있는 쾌락의 최대치를 100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A가 천천히 산책을 할 때 느껴지는 쾌감을 10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는 평소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해서 가끔 마시는 맥주나 가끔 먹는 초콜릿으로도 50 정도의 쾌감을 느낍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80, 성관계를 하면 100 언저리까지 간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론가 이 사람이 마약을 접하게 됩니다. 마약은 당연히 100의 쾌감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성관계는 자연적인 자극이며, 인위적으로 신경전달물질을 터뜨리는 마약보다는 쾌감이 적습니다. 그래서 성관계의 쾌감이 50으로 하향 조정됩니다. 그럼 초콜릿이나 맥주는 25로, 산책은 5로 내려갑니다.


습관적 마약 사용으로 인해 도파민 시스템이 더 이상 마약 사용 자체로는 반응하지 않는 습관화 단계에 접어들면 마약으로도 100의 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아래의 단계들도 전부 하향 조정됩니다. 산책 따위는 쾌감은커녕 불쾌감만 줍니다.


우리의 도파민 시스템이 소소한 즐거움과 극단적 쾌락에 모두 대응하려면 결과를 상대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최댓값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것에 맞추려면 다른 것들의 상대적 가치를 절하하여 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치의 쾌락을 주는 것들이 100이라는 수치에 전부 쌓이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도파민 시스템의 이 속성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쾌락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숏폼, 과도하게 가공된 음식, 불법적인 물질들은 우리가 자연물에서는 얻을 수 없는 수준의 보상감으로까지 우리를 밀어붙이게 되고, 그 결과 우리에게 다른 모든 쾌감들은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느리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지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삶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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