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무 착해, 그래서 널 벌줘야겠어.

반사회척 처벌 : 이타적 행동에 대한 처벌

by RayShines

누군가 너무 착한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못된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 사람 한 명 때문에 너그러움의 기준이 너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사람을 처벌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것을 반사회적 처벌이라고 부릅니다.


영국 노팅엄 대학교의 사이먼 게히터(Simon Gächter)와 스위스 장크트갈렌 대학교의 베네딕트 헤르만(Benedikt Herrmann), 크리스티안 퇴니(Christian Thöni)는 공동으로 연구하여 사이언스에 “여러 사회에서 보이는 반사회적 처벌(Antisocial Punishment Across Societies)”라는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참가자들은 정해진 수의 토큰을 받습니다. 그리고 공동 출자금이 얼마를 내놓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모인 출자금을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합니다.


가장 이기적이지만 최선의 결과는 나는 한 푼도 출자하지 않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자신의 토큰을 모두 출자하는 것입니다. 가장 이타적이지만 최악의 결과는 나는 모두 내놓았는데 남들은 아무도 출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실험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참가자들이 다른 참가자들이 내놓은 출자금이 못마땅할 때는 비용을 치르고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참가자들은 모든 문화권에서 친사회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모든 문화권의 참가자들이 전부 출자금을 내놓았고, 너무 적은 출자금을 내놓은 구두쇠를 처벌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너무 많이 출자를 한 참가자에 대해서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처벌을 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이타적 행동에 대한 처벌이기 때문에 반사회적 처벌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너무 관대한 누군가의 필요 이상으로 너그러운 행동은 사회 전체의 관대함과 너그러움에 대한 기대치를 필요 이상으로 올립니다. 너무 인색한 것도 전체에 피해를 주지만, 너무 관대한 것 역시 전체에 피해를 주니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처벌을 위해서는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내가 가진 토큰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국가에 따라 친사회적 처벌과 반사회적 처벌의 비율이 크게 달랐습니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참가자들은 반사회적 처벌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기적인 참가자들에게 대한 친사회적 처벌은 했습니다. 오만과 그리스인들은 반사회적 처벌, 즉 과도한 이타적 행동을 처벌하는 데 더 많은 토큰을 썼습니다.


연구자들은 한 가지 상관관계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국가일수록 반사회적 처벌 빈도가 높았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을 간단히 평가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두 번째는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 조직에 속해있는가입니다. 이타적 행동에 대한 처벌이 벌어지는 사회는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개인들이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협력을 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우리는 어땠을까요? 서울은 미국의 보스턴과 오만의 무스카트의 중간 정도에 있었습니다. 무임 승차자들에 대해서도 처벌을 하고, 필요 이상으로 관대해 보이는 이들에 대해서도 처벌을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사회도 아무리 많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반사회적 처벌을 하려는 사회로 변해가는 것이 아닐지 우려될 때가 있습니다.


선한 행동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누구를 아끼고, 어떤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 축하할 일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그런 포스팅을 봤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먹고 싶어 하는 디저트를 사기 위해 대신 줄을 서는 남자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싸는 여자들을 비난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글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보기 좋다고 생각할 일을 이제는 네가 노예냐 그걸 왜 하고 있냐는 비난을 하기 바빠졌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숨어있는 맥락이 바로 반사회적 처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좋은 남자, 좋은 여자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지니 그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는 아주 커다란 비용이 듭니다. 개인적인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일입니다. 이타적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도, 인지적으로도 숙고와 결정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에 대해 “왜 너 혼자만 착한 척하는 거야”라는 비난을 쏟아붓는다면 사회적 자본은 더 엷어지고, 우리는 서로를 더욱더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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