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단 우선주의의 파괴적 속성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말입니다.
그럼 이 말을 한 사람은 전자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후자에 속하고자 하는 사람일까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보이는 양태를 비꼬는 것이 목적인데, 이 말 자체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역설이지요.
혹성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68년에 만들어진 고전적인 SF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뒷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당시 침팬지를 연기한 배우들과 고릴라를 연기한 배우들이 따로 식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했던 좀비 드라마들의 배우들도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가진 것이 명확한 집단에서도 인간은 편을 나눕니다. 그리고 두 개의 파벌을 나누는 것이 가장 흔하고 강력합니다.
두 개의 세력을 나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와 그들, 즉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꽤 많은 국가들이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구도로 세상을 나눠 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근거가 아무리 허술하더라도 한 번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그 근거를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1970년대에 이루어진 헨리 타이펠의 연구에 따르면 종이에 찍힌 점의 숫자를 실제보다 적게 헤아렸는지, 많게 헤아렸는지로도 참가자들은 순식간에 내집단과 외집단을 형성하며 내집단에게 강력하게 동일시했습니다. 이를 최소 집단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점의 숫자로도 편을 나누는데 같은 고향, 같은 학교, 같은 회사, 같은 스포츠팀, 같은 브랜드의 스마트폰, 같은 OS 사용 여부 등은 그 근거가 얼마나 명확하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겨우 그런 것으로 편을 나누느냐는 질문보다 왜 이것으로는 규합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게 더 합리적일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학습되는 것일까요? 일단 3~4세만 되어도 아이들은 인종과 성별에 따라서 사람을 나눕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갖고, 인종이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서 부정적 단서를 찾는 경향도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삶의 경로에서 내집단과 외집단을 무의식적으로 가르는 환경에 무수히 놓이므로 자연스럽게 체득됩니다.
인간이 내집단에게 더 관대하고, 내집단을 더 많이 돕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를 내집단 우선주의라고 합니다. 내집단 우선주의가 내집단의 번영을 목적으로 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외집단의 잘못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동시에 내집단의 잘못에는 이상할 정도로 관대해질 때 발생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집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외집단에게 해를 가함으로써 내집단의 발전을 구할 때 발생합니다.
과연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 집단이 잘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보다 잘 되는 것이 목적입니까. 우리가 절대적으로 잘 되고 있다는 근거를 찾기보다 그들보다 잘 되고 있다는 비교 우위를 찾는 것이 더 간단하니, 그들을 파괴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비교 우위도 모자라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최대한 벌려 놓기 위해 그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겠다는 결심에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을 때 생깁니다. 상대 국가와 전쟁을 치르고 그동안의 번영은 모두 잿더미로 돌아가 폐허만 남았는데, 그래도 쟤들에 비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은 건물이 세 채나 남아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1618년에 벌어져 1648년에 끝난 30년 전쟁이 그러했습니다. 신구와 구교 사이에 참혹한 종교 전쟁이 벌어졌는데 종전 조약은 “모든 것을 30년 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모전이었습니다. 당시 독일 전역은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잘 지내는 것보다 그들보다 잘 되는 것, 그들을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될 때 우리는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그들을 이겨야 한다며 충성심을 요구한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내가 속한 내집단의 정직성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