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가르닉 효과
학자들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정서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결과를 일관적으로 발견해왔습니다. 두 진영이 단순히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뇌 자체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반적로 보수주의자들은 애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그렇기 때문에 일을 확실히 끝맺고 싶어합니다. 이른바 종결 욕구가 높은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높습니다. 새로운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조와 위계에 큰 저항을 느끼지 않습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애매함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을 마무리 짓지 않아도 잘 견딥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나 사건이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와 위계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끝맺음이 중요한 일도 있고, 불확실성이 높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완전히 문을 닫고 있으면 도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직과 서열 그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그것을 선호한다, 선호하지 않는다에 따라 무조건 순응하거나 무조건 저항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에는 보수적인 사람들과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일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1920년대 소련 심리학자 블루바 울포브나 자이가르닉은 수많은 음식 주문을 실수 없이 암기하는 웨이터들이 손님이 값을 치르고 떠나면 그 즉시 주문 내역을 잊어버리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과제를 주고는 중간에 일부러 중단시킨 뒤 지금까지의 작업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참가자들이 종결되지 못한 작업에 대해 강박적으로 반추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위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종결 욕구가 높다고 했습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그런 욕구가 상대적으로 덜 높다고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연구가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가난의 원인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하면 두 진영 모두 개인의 게으름을 가난의 원인으로 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숙고할 시간을 더 주면 진보주의자들은 빈곤의 이유를 환경으로 바꾸는 경향이 더 강했습니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한 번 결정하면 결론을 바꾸지 않는 경향이 높습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직감적으로 결정하고 나서도 거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결론을 바꾸는 데 거리낌을 더 적게 느낍니다.
아마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자이가르닉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의식적으로 종결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에 비해 우월하다거나 더 배려심이 깊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향성일 뿐 집단 전체의 고유한 특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성급하게 결론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닐 것이고, 모든 진보주의자들이 비약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면 나의 결론이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지 어느 정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내가 진보적이라면 결론을 내야 할 일에 너무 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것은 아닌지 어느 정도 숙고해봐야 합니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모두 세상에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고 자기 반성적 숙고와 용감하고 시의적절한 결정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