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억제, 그 함수
외로울 때는 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의 모습을 볼 때 눈꼴실까요.
연구자들이 사람들에게 한 가지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흰색 사물을 가능한 한 많이 적어보는 간단한 시험입니다. 실험자들은 참가자들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한쪽 그룹에는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두 가지 예시 - 눈과 우유 - 를 들어주기로 했고, 다른 그룹에는 그런 예시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흰색 사물을 적어냈을까요? 예시를 제공받지 않은 그룹이었습니다. 심지어 눈과 우유를 포함해서 개수를 세어봐도 그랬습니다. 제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눈과 우유라는 예시가 있으면 거기서 파생된 흰색 사물들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 이유를 실험자들은 억제 inhibition 라는 용어로 설명했습니다. 일단 흰색 사물들과 눈, 우유라는 구체적인 관념이 연결되면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사고가 자유롭게 파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 사이의 연결에만 집착하며 계속 우유랑 눈에서만 맴돌게 됩니다. 눈과 우유라는 관념에 집중하게 됨에 따라 이와 경합하는 다른 흰색 사물들은 오히려 억제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가 뭔가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때 다른 것은 모두 억제됩니다. 우리가 기분이 좋으면 발생한 불편함들은 사소한 것들이 됩니다. 우리가 화가 나있거나, 짜증이 난 상태이거나, 직장에서 완전히 소진된 탓에 에너지가 전혀 없으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거나,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하게 됩니다. 우리 뇌의 스포트라이트가 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부족한 것에 집중합니다. 당연할 것입니다.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빨리 찾아서 보충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일 테니까요. 그래서 뇌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결핍을 예민하게 감시합니다. 따라서 위의 실험 결과와 이 사실을 연결한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뭔가에 대한 결핍에 빠져 있으면 그 외의 것들은 간단하게 억제됩니다. 중요도가 현격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결핍은 우리를 터널 안으로 밀어 넣고, 근시안으로 만듭니다.
스스로를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나 해보았습니다. 여러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여러 장 보여준 뒤 그로 인해 어떤 감정이 촉발되는지 물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높은 성적을 받습니다. 이들은 외롭기 때문에, 즉 타인과의 감정적 교류에 결핍이 발생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것에 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타인의 일기를 읽게 한 뒤 감상을 적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일기의 제목을 제시한 뒤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외로운 이들이든 그렇지 않은 이들이든 내용을 기억하는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외로움을 호소했던 이들은 감정 교류, 사회적 관계 등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훨씬 더 정확하게 기억을 했습니다.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들은 사회적 교류에 목말라 있습니다. 감정적 교감의 결핍은 이들의 뇌로 하여금 이 주제의 중요도를 올리고, 다른 주제들의 중요성은 억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를 걸을 때 팔짱을 끼고 가는 커플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인들 사이의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적 교류의 신호를 더 예민하게 감지하게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정서도 더 커집니다. 그래서 눈꼴시다는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생존을 돕는 기계인 동시에 욕망을 향해 달려가도록 우리를 추동질하는 엔진입니다. 그리고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채워 넣으라는 뇌의 명령에 저항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칼로리 결핍을 유발하는 다이어트를 유지하기 어렵고, 외로운 이들을 위한 데이팅앱의 다운로드 건수와 사용자수가 그렇게 많은 것이겠지요.
제 경험으로는 현상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이 즉시 우리의 행동 변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 번 행동을 바꾼다고 그것이 습관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시작이고, 아는 것이 힘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전 저에게 결핍된 것은 지식과 지혜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충분한 지식이 쌓이고 거기서 잘 정리된 지혜를 추출해 낼 수 있다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