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변화의 축적
인간은 분명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화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 즉 한 개인이 가진 본성이 불변의 것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악설, 성선설이 서로 싸우기도 하고, 인간이 빈 서판이냐 아니냐를 두고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양극단이 서로 대립하는 경우 답은 그 중간 어디 즈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논쟁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분명히 변화합니다. 인간의 정신의 몸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믿는다면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명제는 한층 더 단단해집니다. 모든 물리적 신체는 반드시 변화한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역작을 남긴 아우슈비츠 생존자 빅터 프랭클에게 이 말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폭력입니다.
강요, 압제, 조종은 분명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좋은 변화가 아님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요되는 변화는 내부의 동기와 무관하게 인간을 그 외부의 힘이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그 개인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파열음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슨 방법이든 무관하게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이런 생각은 인간을 도구로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인간이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변화가 유지되길 원한다면 변화의 동기는 반드시 내부에서 나와야 합니다.
인간은 그저 외형이 바뀐다고 해서 다른 존재가 되진 않습니다.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신이 육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 내부에 어떤 물리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 개념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라고 표현합니다.
가소성이란 뭔가가 변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경가소성은 신경세포가 새롭게 생성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신경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충분한 동기에서 비롯된 충분한 노력을 충분한 시간 지속할 수 있다면 신경세포의 연결은 변화합니다. 물이 더 많이, 혹은 더 자주 흐르는 수로가 더 깊이 파이듯이 더 자주 신호가 흐르는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은 보다 원활하고 매끄러워집니다. 그리고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연결 사이의 저항은 거의 0에 수렴하며 자동적인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 아이디어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서운 점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변화가 우리를 나쁜 쪽으로 밀어버리는 오토파일럿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거의 저항할 수 없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코올, 약물 사용, 숏폼 탐닉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자기 파괴적인 오토파일럿을 가동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쪽으로 변화하길 깊이 원하며 좋은 행동을 반복하고 그것이 습관이 된다면 우리는 조금씩 변화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비교적 좋은 행동이 자동적인 행동이 되며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밀고 가는 오토파일럿이 될 것입니다. 꾸준한 운동, 독서나 글쓰기 같은 느린 템포의 활동, 식사 후 스마트폰 없이 하는 산책 같은 자기 환기적 활동 등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가끔 우리의 삶이 나쁜 쪽으로 흐를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 간단한 해결책을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만 바꾸면, 매일 알약 한두 개를 삼키면, 건강보조식품만 먹으면 우리는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 정확히는 그러길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습관이 형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개월 정도라고들 합니다. 아마도 신경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생기고 그 사이의 문턱이 낮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겠지요. 변화를 원한다면 이 정도 시간은 투자해봐야 합니다. 마법의 물약 같은 건 없습니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