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인간

by RayShines

사람의 변화는 식물의 성장과 비슷해보입니다. 매일 보면 느껴지지 않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니까요.


사람을 식물에 비유할 때는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식물인간, 온실 속 화초라는 표현이 특히 그렇습니다. 인간처럼 기동성이 있는 생명체가 보기에 식물은 매우 수동적이고 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식물을 키워보면 이런 생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식물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그 생명력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였던 식물도 조건만 갖춰지면 과거는 완전히 잊고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이라고 해봤자 물이나 햇빛 정도 입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그 두 가지만 가지고도 식물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피워냅니다.


식물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매우 점진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볼 때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갑자기 색깔이 바뀌지도 않고, 갑자기 몇 배로 커지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이 늘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박고 환경의 변화에도 대처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제의 식물이 오늘의 식물과 같은 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못 본 식물에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 있어서 놀라게 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식물이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키우는 화분은 새 이파리는 나이가 좀 든 이파리와 색깔이 완전히 다릅니다. 밝고 빛나는 초록빛이 돕니다. 뭔지 모를 강한 생명력과 활기가 느껴집니다. 반짝 반짝 빛나기도 합니다. 그런 변화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몇 개월 만에 그 화분을 보는 사람들 중 가끔 “벌써 이렇게 컸냐”며 진심으로 놀라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매일 보는 저는 알 수 없지만, 몇 개월만에 보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매일 조금씩 변화한 것이 몇 개월간 쌓이면 그때는 엄청난 변화가 됩니다.


저는 인간의 변화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사소한 계기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개과천선이라는 표현도 흔히 씁니다. 인간에게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메말랐던 식물이 새로운 생명을 움틔우듯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변화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변화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매일 보면 전혀 어제와 똑같은 식물처럼 사람 역시 어제와 오늘은 그저 같은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긴 시간 뒤에는 분명히 변화할 것입니다. 고개를 조금씩 햇빛 쪽으로 돌리는 식물처럼, 새로운 작은 이파리를 창쪽으로 틔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볕을 받으려고 하는 식물처럼 조금씩 조금씩 쌓아나가는 변화들이 결국은 예전과는 다른 생명체로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식물에게는 명확한 지향점이 있습니다.

해를 향해 자라는 식물도 있고, 그늘을 향해 자라는 식물도 있습니다. 따뜻해야 하는 식물이 있고, 쌀쌀한 것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향이 명확한 존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의 많은 순간 우리는 방황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삶은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자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 것입니다. 식물들처럼 말입니다.


식물들은 자기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를지 몰라도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마 목적은 없을 것입니다. 식물은 아마도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합니다. 이 말이 만족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원하는 무엇인가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어딘가는 아마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도달 가능점을 향한 경주가 아니라 조금 돌아가더라도 지향점을 향해 천천히 파도를 해쳐나가는 항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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