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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너를 생각하며 쓰는 절절한 글 따위는

by 도공유

심우는 할 일을 하기 위해 간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힌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추울만큼의 공기는 할 일을 미루지 않게 하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할 일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시킨 음료가 나오지 않았다. 심우는 팔로워 수가 0명인 SNS 비공계 계정에 들어가 어제 끄적인 글을 본다. 심우의 마음에 작은 인센스 스틱을 피운 듯 흐물거리는 연기가 가득찬다. 너무 많이 맡은 향에 미식거린다. 한숨을 푹 쉰 심우는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가 주저앉을 듯 공격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 성인이 된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재미있고 멋진 이들을 느끼며 내 마음에 너를 담아둘 자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한 순간쯤은, 너와 함께한 순간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닳고 닳도록 생각하다보면, 그 사람의 크기와 모양만큼이 마음에서 패여 더 이상 마음이 패이지 않고 그 사람이 자리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너를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떠올리면서 깎여나간 내 마음이 더 이상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거야.


삐비비빅. 삐비비빅. 심우 자신의 명치 위쪽께에 그의 모양으로 구멍이 난 것을 상상하다가 진동벨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그 구멍은 손을 넣었다 뺐다 해도 될 만큼 넓었고, 그 틈으로 저 하늘의 구름을 볼 수도 있었다.


|| 네가 처음 나에게 와서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을 때, 장난치면서도 그걸 통해 나를 챙길 때, 돗자리 위에 누워 보이는 네 얼굴 옆선과 갈색 눈동자 그리고 바람에 머리칼이 살랑거렸을 떄, 건너편에 앉은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무슨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계단을 오르다가 심장이 빨리 뛴다며 네 명치에 내 손을 가져다 댔을 때, 억지스럽게 나에게 져주기를 바랄 때, 무리 속에서 돌아와 내 손을 잡고 다시 갔을 때. 모든 순간마다 너를 보면 모두 내어주고 싶고, 모두 져줄 수 있었다. 네가 가진 게 더 많다는 걸 알았어도 그랬다.


심우는 마음을 버혀낸다는 것이 이런느낌일까, 알싸한 무언가가 마음에서 퍼지는 것을 감각했다. 너무 쓰지는 않지만 씁씁함은 알고 있는. 마치 어릴적 써서 코 막고 마셨던 홍삼이 이제는 조금 달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손가락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무언가 쏟아내버리듯이. 콸콸 묵어있던 것이 틈을 찾아버린 듯.


|| 네가 왜 계속 떠오를까. 아무것도 선뜻 적지 못하는 것은 생각을 조금 하느라. 너에게서 찾은 빛나는 것들과 너를 계속 응원하게 되는 수많은 이유가 있는데. 내가 그런 것들 때문에 네가 기억나는 게 맞을까. 아니 나는 그냥 네가 기억나니까 그런 이유들이 보였던 거다.


자존심이다. 나는 지금 자존심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난다는 말로 대체해서 쓰고 있다. 맞다. 나는 네가 좋으니까, 너라서 좋으니까 네가 하는 행동들이 여느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었어도 내게는 울림이 되었던 것이다. 너를 좋아한 수많은 이유들은 결과일 뿐 원인은 내 마음이었다. 그런 터질듯 한 마음이 모난 돌이 되어 내 마음에 기스를 내었음에도 나는 그 마음을 너에게 줄 수 없었다. 그 마음이 네게 상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품는 게 맞았으니까. 내가 나라서 그 마음은 네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너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심우는 드디어 그를 기억했다가 아니라 좋아했다는 표현을 썼다. 좋아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심우는 자신의 손에서 그가 떠나감을 느꼈다. 놓았기에 좋아한 마음을 인정할 수 있었을까. 심우는 자신이 어땠어야 그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잠깐 생각했다.


|| 매일 같이 너를 볼 수 있는 날들이 끝났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했다. 그 사람들에게 고루고루 적당히 마음을 주는 방법을 너와 함께 하는 동안 배웠기에 적당히 많은 이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몰아주는 마음이 나를 고립시킨다는 것을, 그럼에도 너 하나라면 내 마음이 고립되어도 좋았다. 너와 함께 고립될 수 있었다면 말이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 사람들과 만나며 내 고립은 끝이 났다.


음료의 얼음이 꽤 녹아 층이 질 때쯤 심우는 빨대로 그것을 섞었다. 섞으며 고립이 끝난 게 맞을지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사실관계는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물어볼 곳은 자신의 마음뿐이었다는 게 모순이라고 생각하며.


|| 적당한 사랑이 내게는 적성이었다. 그렇게 너를 잊어도, 너와 맞닿지 않아도 내 삶은 그럭저럭 즐거운 일들로 웃으며 살아지겠구나 생각했다. 그제서야 네가 나의 친구였다. 불편하지 않았다. 네가 떠나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라면 좋았겠지만. 네가 떠나가도 상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서였다.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우리가 딱 여기까지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내가 가장 온 마음으로 좋아했던 사랑이었다. 애써 접어 땅에 묻은 마음이었다. 덕분에 누구, 무엇 하나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손가락이 멈춰갈때쯤 심우는 자신이 며칠 전 그가 SNS에서 추천했던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이없어!"


심우는 귀를 막고 있던 이어폰을 배추 뽑듯 빼고는 저장 버튼을 눌렀다.

파일명 입력 칸에 고민 없이 글을 적어내렸을 때처럼, 빠르게 제목을 입력했다.


|| 이 글을 마지막으로 너를 생각하며 쓰는 절절한 글 따위는 쓰지 않을 것이다.


심우는 기지개를 펴고 폴더 저 깊숙한 어딘가로 그 파일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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