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절거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삼류 Aug 26. 2021

낭만

지루함



카페는 주로 비가 내리면 손님이 없다. 사람들이 밖을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하늘 아래의 모든 것들의 열기를 식히니 자연스레 차가운 음료를 주로 파는 카페는 한없이 적적하다. 나는 손님이 없을 때에 바닥을 닦거나 냉장고 정리를 하거나 음료 컵이나 빨대 등 을 채우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끝내고 나면 계산대 앞에서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인 채로. 계산대 옆 음료를 내보내는 은색의 길 다란 바가 달린 큰 창문이 있다. 길가에 지나다니며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큰 액자 속 그림에 그려진 여자처럼 볼 것 같다. 나는 한 폭의 그림 속에 갇힌 채 창문 너머 골목을 바라본다. 하늘의 색을 담던 빗방울들은 두발 달린 우산 위로 떨어져 우산의 색을 입고 우산 끝으로 굴러 떨어진다. 찰나의 순간 온 세상을 작은 방울에 담은 채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다. 깨져버린 물의 파편들이 어질러진 나의 공간 속 물건 들 같다. 자신의 힘으로는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또는 되돌릴 수 없는 그저 햇빛이 드리울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무기력의 끝을 본 듯하다. 우산 아래로 얼굴이 보이는 사람도 안 보이는 사람도 모두 나에겐 움직이는 책들처럼 보인다. 소리 없이 골목을 지나치며 자신의 책장으로 향하는 책들 곧 입을 펼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한 권의 책

 날카롭게 생기고 허름한 옷을 입은 늙은 남자 볼품없는 차림으로 늙은듯해도 주름에 새겨진 세월만큼이나 방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지 얼만 큼의 두께 일지 코미디 일지 멜로 일지 모르는 그런 이야기, 책도 사람도 펼쳐보기 전까진 모르는 법 단순한 겉껍질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내면을 상상하며 멋대로 판단하는 나의 무례함을 반성한다. 끝없이 하늘에서부터 지상 위로 달려서 떨어지던 빗방울은 서서히 멈추고 이내 골목을 시끄럽게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서서히 사라졌고 나에게 반대편 시야를 허락한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맞은편 낡은 상가의 이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장 지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평생을 일해도 저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저 위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한 머리와 내키지 않는 두 다리였다. 나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떨어지는 처마의 빗방울을 바라본다.  툭 툭 나무 받침을 때리는 비 소리 그리고 나의 의식의 뒤로 흐르는 어딜 가든 똑같이 흘러나오는 최신가요들 비록 내 귀엔 두 소리만이 들리지만 나는  툭 툭 떨어지는 빗방울 아래에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를 한대 들여놓는다. 멋대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내 상상 속의 건반을 저마다의 강도로 건반을 누른다. 약하게 강하게 무겁게 가볍게 왼쪽 오른쪽 악보 하나 볼 줄 모루는 내 눈으로 하나의 선율을 그린다.  그렇게 낭만 없는 지루한 하루에 낭만을 어거지로 욱여넣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주김씨의 그지같은 상상들 1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