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상담 후 느낀점

by 발작가

얼마 전 상담에서 엄마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나에게 어릴 적에 이렇게 했어요, 또 저렇게 했어요. 라고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며 상담쌤한테 내용을 설명하고 그때의 엄마의 말을 다시 생각하면서. 곧 마음이 울상이 되었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면 우리 엄마는 나에게 늘 세상과 사람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세상과 사람들은 절대 너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그들은 너를 적대시해, 라는 메세지를 받았다고 느껴진다. 기억 속 사례 3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에 엄마가 내 가방에 달고 다닐 수 있는 아주 예쁜 인형을 하나 사서 달아주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 인형이 사라진것이다. 나는 도무지 어디에서 잃어버린건지 내가 놓고 온건지 아니면 없어진지도 모르는 채로 집에 울상이 되어 왔는데. 엄마는 말했다. "누군가 너의 예쁜 인형을 시샘하는 사람이 있어서 훔쳐간거야!"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 훔쳐간다.... 훔쳐간다는 생각은 태어나 해본적이 없는 나이에 엄마의 그 잔혹한 말까지 들으니 인형이 없어져서 슬픈마음과 동시에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무척 무서워졌다. 두 번째 일화는, 2002 월드컵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건데.. 당시 마트 앞에 큰 스크린을 놓아두고 월드컵 경기를 다같이 보면서 응원을 했던적이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도 ㅇㅇ시에 그 마트 앞으로 나와! 같이 보자. 라고 나를 초대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서 엄마에게 그 사실을 전했는데, 엄마는 말했다. "너 거기 나가봤자 너 혼자밖에 없을거야, 너 속은거야!" 하고. 또한번 잔혹한 말을. 나는 이때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친구들한테 내가 속았을거라고.. 친구들이 나를 놀리려고 속이는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의 말에 충격을 받았고 이후의 일은 어찌됐는지 이상하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번째 일화는.. 일화라기 보다는, 내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놀러 나간다고 할 때마다 엄마가 주의깊게 물어보았던 질문인데. 엄마는 먼저 누가 먼저 놀자고 했는지를 따져 물었다. ㅇㅇ이가 먼저 놀쟀어? 니가 먼저 놀자고 한거야? 이부분에서 나는 엄마가 얼마나 자존심을 중시하는 사람인가를 나중에 깨달았다. 애인과 사귈때, 먼저 애정표현을 더 많이 하고 더 좋아한다고 말하면 모양빠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엄마도 그랬다. 그래서 엄마는 종종 그것을 물었고, 그 다음으로는 ㅇㅇ이 집에서 가까운데서 만나? 아니면 우리집에서 가까운데서 만나기로 했어? 이다. 이 질문 역시 동일한 맥락. 하지만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나는 엄마가 왜 저런 질문들을 하는지 이유를 모른채 그냥 의아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약간의 기분이 나쁜 정도.



위의 세 예시들을 선생님한테 이야기 하고 나니, 선생님이 말했다. "엄마가 ㅇㅇ씨를 싫어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사람들을 보는 엄마의 시각이 그런거에요.. 잔뜩 경계하고 위협적으로 느끼고... 그런거에요" 이 말을 들었을때, 정신이 순간 아찔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엄마가 나를 싫어해서 저런 잔혹한 말들을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러고 보니, 엄마 또한 잔뜩 웅크리고 있는 발톱세운 고양이였던 것이다. 엄마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잔혹한 말들을 쏟아놓으며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엄마의 시각을 내게 전달해주었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학창시절부터 유독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했고, 또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한 사람을 신뢰하는데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미워한게 아니라 엄마 또한 힘든 한 사람이었다는것을 알고 나니, 동시에 엄마에 대한 연민이 감정이 느껴지면서 내가 지금껏 엄마처럼 살아왔구나... 라는걸 깨달았다. 엄마처럼 세상과 사람들은 나쁘고 적대적이고 경계해야 할 무언가고 믿어서는 안되고 더 친밀하게 다가가서는 안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다 나를 싫어해. 학교에 가도, 회사에 가도, 모임에 가도, 상담에 가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들 날 싫어해! 하고 나 혼자 단정짓고 나를 대하는 그들의 진짜 마음이나 태도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혼자 미움받는 사람이 되는 길을 택했었는데. 그 고집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선 함께 일하는 언니와의 관계가 그랬다. 입사 초반 몇 달간은 언니가 좋긴 한데 다가가기는 조금 망설여지고.. 언니가 나한테 잘해주면 또 너무 좋고.. 근데 언니가 표정이나 말투에 변화가 생기면 어쩐지 내가 잘못한거같고.. 미움받고있는다는 생각에.. 언니가 날 보며 웃을때도 그런 생각들을 멈추지 못했는데. 함께 지낸지 6개월째가 된 지금은 알 것 같다. 아.. 언니가 웃는건 그냥 내가 귀여워서 웃는구나... 언니도 나랑 같이 점심시간 보내는걸 좋아하는구나... 언니가 말투나 표정에 변화가 생기는건 나 때문이 아니라 뭔가 바쁜 일이 있거나 다른 일 때문이겠구나... 하고.. 언니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 사라지면서 이 관계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또 상담쌤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상담 초반에는 내가 너무 이메일을 많이 보낸 것 같아... 문자를 너무 보낸거같아.. 자꾸 상담을 급하게 잡아서 싫어하겠지? 혹은 이런 이야기 하면 싫어하겠지?? 하고 불안불한하게 관계 유지를 해왔다면, 지금은 또 그냥 마음이 전달되는 부분이 느껴진다. 쌤이 날 정말로 좋아해주시는구나.. 쌤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 계셨던거구나...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던건 쌤이 아니라 나였네. 이제 나만 중심 잘 잡고 쌤이랑 같이 있으면 되는구나. 하고.



이렇게 엄마가 내게 물려준 잔혹한 세상에 대한 시각에서 조금은 벗어나, 사람들을 정말로 믿고 의지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새삼 너무 뿌듯하기도 하고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다. 30년을...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할거라고 미움받는 애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이렇게 안정적인 관계도 만들어가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을정도로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이 기억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자 조금 길게나마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소중한 마음과 기억은 붙잡아두고 싶으니, 나의 이 변화를 꼭 기록으로 남겨두자고. 엄마에 대해서는 연민의 감정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는 이제 엄마랑은 달라! 라는 마음이 들어서 조금 희망적인 것 같다. 엄마는 아마 평생 죽기 직전까지 세상에 대한 경계심을 안고서 살아가겠지만, 나는 다르다고. 나는 벌써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물론 흉흉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온전히 믿는다는게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정말 마음을 다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믿어보자고. 참 이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키는데 30년이 걸렸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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