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공허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내 고통의 주요 원인에는 항상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24시간 내내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갑자기 공허함이 사라진걸까? 사실 요즘도 간혹 길을 걷다 공허함이 훅 하고 바람처럼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엇 오랜만이네! 근데 너무 바람이 훅 하고 쎄게 들어오는 느낌이라 시리고 허하다. 하고 생각하곤 한다. 시리고 허한 느낌. 갑자기 가볍고 차가운 바람이 내 몸 속으로 훅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공허함과 닮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것은 실체도 없고 무게도 없고 느낌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허함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곤란할 때가 많았다. 실체도 없고 무게도 없는 그냥 둥둥 떠 있는 느낌만을 전달하자면 너무나 추상적이라고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는 나도, 듣는 사람에게도 충분치 않은 설명이 될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공허함을 채우는 유일한 방식으로 "사람", "관계" 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하고 감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여러명의 사람들과 연락하고 지내야 하며 다수와 깊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얼마 전 상담에서 선생님이 한 말에서 조금 헉, 하고 놀랐던 부분이 있었는데.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땐 참 관계로 공허함을 채웠었죠~ 하고 말하는 내게 선생님은 말했다. "근데 너 그때도 계속 공허했잖아. 아무도 너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었잖아" 이 말에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 얼어붙었다. 음.....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그랬네요... 아무리 ㅇㅇ님이 ㅇㅇ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수도없이 말해주고 옆에 있어줘도 내겐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늘 있었다. 늘 그놈의 리더에게만 집착하면서 리더 인정만 받으려고.. 리더의 애정만 독차지 하려고 눈에 불이 나 있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과거를 제대로 회상해 보니 정말로 그랬다. 나는 그 누구의 관심과 애정으로도 마음 속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지금은? 지금은 왜 이렇게 안정되었는데? 아마 지금은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90% 이상씩 채워지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총무님도, 사장님들도 다들 나를 이뻐해주신다. 조그만 농담 하나를 던져도 세상 즐겁게 웃어주시고, 조금만 음식을 맛나게 먹어도 세상 좋아하시고, 간단한 일처리를 해도 세상 일 잘 하는 사람으로 취급해주시니. 이렇게 나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회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일에서 뿐 아니라, 회사의 사람들과도 조금씩 관계를 맺어가고 있으니 그 속에서 채워지는 것들도 상당할 것이다. 총무님과는 날이 갈수록 친해지고 있고. 나를 애칭으로 부르실 만큼 이뻐해주시고. 몇몇 사장님들도 나랑 오래 일하고 싶다고 정규직 전환되면 참 좋을텐데~ 하고 말씀해주신다. 또 일은 일대로 어렵지 않고, 일이 없는 날은 인터넷을 켜서 내 개인 공부같은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이처럼 다니고 싶은 회사는 처음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외에 더 중요한 포인트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는 것. 나의 어린시절 성장과정과, 지난 회사에서의 경험들을 털어보면, 나는 항상 내가 남들과 "다르구나" 라는 포인트에서 좌절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그 다르다는 것은 특별하거나 우월하다는 것이 아닌 덜떨어지고 저급한 사람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에 더욱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부터 줄곧 느껴왔던 핵심 감정이 나는 남들과 다르구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구나. 라는 감정이었으니. 늘 어느 집단에 가든 소외감과 고립감 그리고 열등감을 느꼈고, 그것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더욱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어딜 가나, 누굴 만나든 비교를 했었고, 자신을 깎아내리며 자학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회사에서는 그런 열등감이라든지, 비교 같은 요소들이 빠져버리니, 너무나 자신감이 오르면서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의 내가 된 것이다.
상담 선생님도 얘기 하셨지만, 나 또한 이번 회사를 다니면서 변화된 모습들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렇게 나를 사회로부터 배제시켰던 핵심 감정들이 해소가 되어 버리니 삶이 안정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감도 상승하고,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의욕이 생겨 이런저런 공부도 하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번에 이런 큰 변화를 겪으면서, 내 공허를 채워주는 건 결코 사람이나 관계만이 아니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공허는 자기 안에 있는 핵심 감정이 해소되면서 사라질 수 있다. 그 핵심 감정이 소외든, 비교든, 열등감이든, 이질감이든간에. 어딘가 내가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면. 그곳에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면. 충분히 채워질 수 있는 공허감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물론 나는 안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가 절대 평범한 회사가 아니고, 어딜 가나 이렇게 인정받고 이쁨받을 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의 이 경험들을 토대로 자존감을 올리고 나도 남과 다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다면. 다음 스텝에 가서도 같은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