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
최근 변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작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저는 아직 변한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라는 내 말에 의사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며 자기가 나를 오랫동안 봐 온 것은 아니지만 예전 차트를 조금만 살펴봐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변하셨는데. 하고 말하시면서 이번 기회에 변화에 대해 좀 적어보라고 하셨다. 현재 내가 느끼는 변화된 부분들, 아직도 그대로인 부분들에 대해서 적어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이 얘기를 듣고 몇 일 후에 바로 나는 변화에 대해 적어 보았다. 변화되었다고 느끼는 부분들은 총 5가지가 나왔고, 아직도 그대로인 부분에 대해서는 총 10가지가 나왔다. 처음에 변화된 부분들을 적으면서도 사실 조금 놀라기는 했다. 이런 부분들이 좋아졌구나. 나아졌구나. 의사 선생님 말씀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네? 하고 스스로도 조금 뿌듯한 느낌이 들면서 적어보길 잘했다고 느꼈다. 반면 여전히 그대로인 부분들을 적어내려가면서는 약간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직도 그대로인 부분이 10가지나 된다니. 고쳐나가야 할 부분들이 여전히 많구나. 그럼 난 어떤걸까? 그대로인 부분이 10가지나 남아 있으니 여전히 변화되지 못했다고 징징대야 하는게 맞을까? 하지만 스스로도 느끼지만 그대로인 부분들 중에서도 정지되어 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걸 알고있다.
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 태도, 생각 등이 변화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들 한다. 아무리 상담을 오래 받았어도 그대로인 사람들은 그대로고, 오히려 자신의 특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알을 깨고 나온 사람같다.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견고한 알 속에 갇혀있던 내가. 처음엔 외부의 힘으로 그 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 하더니. 나중엔 스스로가 그 알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닐까. 참 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에 대해 탐색하고, 관계 안에서의 나에 대해 돌아보고, 부족한 모습에 반성을 하기도, 잘못된 모습에 아파하기도 하면서. 점차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알을 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무리 외력으로 알을 깨어서 내가 나갈 수 있다 해도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내가 알을 깨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사람들과의 연결감. 그들과 접촉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랜 세월 사람들을 피해 혼자서만 땅굴을 파며 지냈던 내게 심리상담과 집단상담은 많은 자극제가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알 안에 혼자 있던 나를 불렀고, 문을 두드렸고, 같이 나가자고 얘기했다. 처음엔 들은 척도 하지 않거나 그들의 마음을 짓밟다가. 점차 그들이 내게 다가오는 횟수가 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차적으로 나도 변화했다. 이제까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알 속에 갇혀 있겠지.
이번에 변화된 지점들을 적어보면서. 스스로 잘해왔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동시에 그간 나를 거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참 많은 여러 마음들을 내게 나누어 주고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것이다. 물론 이전 센터에서 마지막에 나올 때의 감정은 좋지 않았지만. 참 많은 것들을 겪게 해 주어서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도 있다. 또 지금까지 함께 해주었던 모든 의사 선생님들에게도. 상담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내담자, 환자 였을텐데. 그들은 나와 함께 해 주었다. 참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마음을 느낀다. 변화는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 한 사람의 변화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명이 깃들어 있다.
물론 내가 이렇게까지 변화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종종 닥쳐오는 자살충동과 자해충동. 때때로 느껴지는 살인충동까지. 그런 충동들을 마음에 떠안은 채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때론 소통보단 비난과 질타를 받을 때가 많아서 또다시 자살충동을 느끼고.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는 항상 특정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지켜봐주고. 좋아해줬던. 아무리 내가 죽고싶다 난리를 쳐도. 그 마음까지도 고스란히 받아주었던. 지켜봐주었던 몇몇 사람들. 그들에게는 정말 큰 마음의 빚을 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을 통해서 나는 안전하게 있을 수있었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서 또 변화했다. 내가 그들 입장이었어도. 나같은 친구를 두는 건 참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서. 다시 그들에게 다가가진 못하겠지만. 나는 계속 그들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참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나의 이 변화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빚을 값는 길은 나와 같은, 혹은 나와 다른 힘든 사람들에게 먼저 또 손을 내밀고 그들을 지켜봐주는 일인 것 같다. 누군가가 너무 감당하기 벅차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가 너무 좋아서 묵묵히 그 자리를 버텨주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인데. 감사하게도 내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변화에 대해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네. 어쩌면 이 변화는 오롯이 그 소중한 사람들의 몫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