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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Nov 19. 2022

20200702 목요일: 병실친구

첫번째 입원: 20200630~20200711


어제도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결국 또 수면제... 오늘 아침엔 푹 잔 느낌에 비교적 기분이 괜찮았는데 또 다운된다. 병동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우울... 저 외국인도 저렇게 잘 어울리는데 나는 왜이럴까.. 정말 왜 이러는걸까.. 내가 너무 싫어진다. 어디서든 어울리는게 가장 문제다. 아침에 검사하러 갈 때 휠체어를 타고 갔는데 뭔가 내가 되게 '환자' 같았다. 그런데 병실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하는 얘길 들어보면 나는 또 환자도 아니다. 그다지 심하게 아픈것도 아닌. 이 병동에서 비교적 멀쩡한 사람. 또 이질감을 느낀다. 다들 자기가 이래서 병원에 왔고, 저래서 병원에 왔고 하며 잘 설명하고 떠드는데. 나는 뭘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상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는 가볍고 심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약먹는 수를 봐도 그렇다. 나는 약도 많이 먹지 않는다. 비교적 가벼운 상태. 입원까지 할 일은 아니었어. 하고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사람들과 섞여서 어울리는게 겁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아픈 사연들을 알게 되는게 겁이 난다. 마음이 아프고 예민한 사람들이 어떤지 알아서, 섣부른 위로나 공감을 표하기도 싫고, 그저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아무리 또래여도, 정말 또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선뜻 마음이 나서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그런 생각이 들어 자꾸. 왜이렇게 의미가 없을까.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해서.. 그것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스스로 고립되고있어. 학교에서의 상황, 회사에서의 상황, 집단에서의 상황. 모든게 다 똑같아.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아.


점심 이후, 같은 병실 친구와 밥을 같이 먹으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오전에 검사를 하면서 내내 내가 이런 검사까지 해가면서, 이렇게까지 살려고 애써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어 울적했다.. 이렇게까지.... 시발...


병실친구와 점심을 같이 먹고는 마음이 나아진 것도 웃기다ㅋㅋ 내가 거의 나이 제일 많은듯ㅠㅠ 왜캐 애들이 다 어리냐.. MMPI하면서 치료요법실에 가봤다. 다른 사람들이랑도 인사하고, 수다도 좀 떨고... 뭔가 다들 사연이 무척 많구나.. 싶었다. 사연으로는 내가 뒤질수도 있겠다는 생각. 내가 원하는대로 힘든 사람들 가득한 곳에 왔는데 나는 이곳에서도 비교를 하고 이질감을 느낀다. 정말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없구나... 어디에도 없구나.. 하고 느꼈다. 나는 왜이렇게 이질감이 심할까...ㅜㅜ 주치의 면담하고 내게 계속 희망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해서 어려웠다. 긴 침묵...... 주치의는 내게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 5가지에 대해서 생각해오라고 했다.


병실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 말이 무척 많다. 나는 연기를 한다. 관심있는 척. 걱정되는 척.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위로나 공감 같은 것들. 솔직히 버겁고 힘들다. 나한테 막 달라붙으려는 듯이 느껴져서.. 나이 많다는 이유로 언니 노릇하기 무척 힘들다ㅠㅠ 태주님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내게 잘해주는 마음들.. 내가 버겁다는 말들.. 이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한다. 병실친구가 생겨서 좋은 마음과 동시에 부담스럽고 짜증이 난다. 나이 먹은게 죄야 정말.....


어쩌면 나는 '정상적인 것'에 목을 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동에서 어린 친구들이 우울한 얘기, 죽고싶다는 얘기, 성적 취향 등에 대해 얘기할 때 조금 당혹스러우면서도 어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었다. 그 얘길 들으면서 나도 죽고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걸 피해야할지 어찌해야할지.. 마음이 괴롭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가. 죽고싶은 상태... 죽지 않고 살아갈 상태... 그 어디 중간쯤 위치해 있겠지?! 모르겠다. 애들이랑 어울리기 싫다. 그들의 죽고싶은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괴로워. 빨리 병원에서 나가고 싶다. 너무 갑갑하고 무섭다. 혼자있는게 무서워.




목요일엔 조금씩 병실 사람들과도 말을 섞고, 다른 병실 사람들과도 몇 마디 했던 것 같다. 20대 중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나머지는 다 어렸다. 무슨 사연들인지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특히 '자살' 얘기를 많이 하던 아이가 가장 인상깊었다. 24살 여자아이였는데, 친한 친구가 자살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부터 계속 죽고싶었다고... 자살 얘기를 계속하는 이 친구 앞에서 나는 뭐라 말을 해야할지. 할 말을 잃었다. 내 안에도 여전히 죽고싶은 마음이 남아있고, 저 아이처럼 저렇게 강하게 충동을 느꼈던 적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죽지마' 하고 말할 수 없었다. 죽고싶은 마음을 너무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면 안된다거나, 나쁘다거나. 어떤 판단도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력함과 함께 내 안에 남아있던 충동이 기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치료요법실에 오는건 피하자고. 그런 생각을 했다. 입원한 친구 중에 고등학생 여자아이도 있었는데. 외관이 너무 남자아이같아서 남자아이인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언니, 오빠 하는걸 보고 알았다. 그리고 이 아이가 직접 얘기했는데. 자기는 여자 좋아한다고. 여자친구들 사귄다고. 음...... 이때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얘기는 많이 들어봤고 딱히 편견도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실제 사람을 만나게 되니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실에서 친해진 두 친구중 한명은 조울증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또다른 한 명은 남자문제 때문에 자살을 하려다 말았다고. 이 친구는 자기가 자진해서 쉬고싶다고 입원시켜 달라고 했다고 한다. 특별한 정신적 문제나 이슈는 없었지만 쉬러 온거라며 자기는 여기가 너무 좋다고.... 신기했다. 나는 아직도 너무 갑갑하고 나가고 싶은데.... 자진해서 입원시켜달라 말하고 쉬러 왔다고 하는게....... 다만 이 친구는 말이 너무 많아서 조금 힘들었다. 자기 가족얘기 친척얘기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 등등등 계속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하는 통에 무척 피곤해졌다. 아마 이 친구가 우리 병동에서 가장 밝고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었나. 자기 교수님이랑 주치의도 약물치료보다는 심리치료나 받으라고 했다니까... 이 친구를 보면서 폐쇄병동에 이렇게 멀쩡한 애도 들어올 수 있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되었다.



주치의 숙제 -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들


1.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때.

혜운, 랄라, 태주, 비버, 친구, ㅇㅇ언니

2. 엄마가 나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때

3. 삐약이 선생님, 곰돌이 푸 선생님

4. 리튬

5. 널 좋아해, 라는 말.

6. 친구와 만날 날을 정하고 그때까지 살아있기.



이 숙제 하고 주치의한테 보여줬는데.. 주치의가 자기가 말한건 죽고싶은 충동이 들때 할 수 있는 대처법 이었다며.. 그래도 이런것도 있으면 좋지 하고 말했다. 삐약이 선생님, 곰돌이 푸 선생님이 나오는 대목에선 이사람들 누구냐며.. 내가 정신과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이분들도 자기가 이렇게 불리우는걸 알아요?? 하셔서 ㅋㅋㅋㅋㅋ 개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 아뇨 모른다고 존나 쳐웃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말을 하는 주치의의 표정이 존나 어이없어보여서 너무 웃겼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순간 자기는 어떻게 불리고 있나 걱정했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개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튬이 있는 대목에서도 주치의가 재밌다며 웃었다. 이건 좀 재밌네요 ㅋㅋ 하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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