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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Nov 19. 2022

20200701 수요일: 개빡쳐

첫번째 입원: 20200630~20200711


이틀째 지내는 중인데 너무 갑갑하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 그런데 컵을 빼앗겼고. 컵이 없어서 커피도 못마신다 ㅅㅂ 나의 작은 삶의 낙 이었는데. 하루에 한 잔 커피. 너무 갑갑하다 정말. 아침은 어제 잠을 잘 못자서 비몽사몽에 제대로 안먹었다. 그랬더니 왜캐 또 배가 고파ㅜㅜ 아침을 7시 반에 먹다니... 말이 안돼. 아빠가 전화를 드럽게 안받는다. 나 필요한 물품 있는데ㅜㅜ 왜 하필 이 때 아빠는 여행을 간거야 시팔. 존나 짜증나 빨리 이 아픈 신발이라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발이 다 까지고 너무 아프다ㅜ 병동에선 할 일이 없어 잠만 자게 되는 것 같다. 무한정 누워서 시간 축내기. 이게 쉬는건가? 이게 쉬는 거라면 너무 지루하잖아. 그래도 약 때문인지 뭔지 죽고싶은 생각은 안든다. 잘 온걸까.. 그냥 당장 퇴원시켜달라 하고싶다ㅠㅠ 곰돌이 푸 쌤이랑 삐약이 쌤이랑 보고싶다..... 여기 의사들 별로야.. 걍 기계 로봇같아. 시발. 아 배고프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으면 진짜 좋을텐데.. 플러스펜 별로다. 어릴때 이거 좋아했는데 써보니 너무 뭉툭하다. 좀있음 밥시간이다. 어젠 왜그렇게 잠을 못잤지? 머리아프고 어지럽고 토할것같고. 약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입원 첫날이라 예민해진걸까? 하여튼 유난이다. 새벽 1시에 진통제 먹고 새벽 2시에 수면제 먹고. 제발 오늘은 잘 자길..




밥이 나왔는데 열빡쳤다. 내가 할라피뇨 볶음밥 달라고 했자나!! 근데 왜 일반식이냐고ㅠㅠ 배고파서 밥 받았는데 시발 존나 서러운거ㅠㅠ 맛없어서 남기려다 너무 배고파서 어쩔수 없이 다 먹었다 시발.... 나중에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식판에 나온 종이에 표시하는게 아니고, 간호사실에 있는 종이에 표시하는거였어;;; 설명 안들었어요? 하는데 시발 개빡쳐ㅡㅡ 커피도 여전히 먹고싶고.. 정말 지낼수록 갑갑한 곳이야. 자거나 밥먹거나 책읽거나 일기쓰거나 아니면 없음.. 면담은 진짜 조금밖에 안한다. 기계로봇같은게 내 말을 모조리 받아적을 뿐... AI랑 대화하는 줄...




슬리퍼를 아빠가 빨리 가져와야하는데.. 전화를 안받아ㅠㅠ 발아파 죽겠다ㅠ 역시 싸구려 사면 안되나봐.. 아빠가 오늘 몇시에 집에 오는지를 모르니, 언제 갖다달라고 얘기도 못하고 십팔.. 나가고 싶다. 내일 퇴원한다고 해버릴까. 아진짜 갑갑해 미칠것같아. 할 일이 없어ㅠㅠ 커피 마실 컵이랑 믹스커피만 있어도 좀 나을 것 같은데...




하... 울화통이 치밀 뻔했다. 아빠가 계속 전화를 안받아. 시발... 존나 빡쳐가지고 다 뒤집어 엎을 뻔. 후....... 다행히 병실로 돌아오자 아빠한테서 전화가 와 있었다. 다시 전화 달라고.. 그래서 화를 참으며 전화를 했다. 아 진짜 너무 열받아!!!!!! 나는 여기 갇혀서 울적하고 답답하게 있는데 아빠는 놀러나 가고. 진심 너무 좆같애. 빨리 나가고 싶다고 시발. 빨리 나가고싶어!!!! 의사들도 그지같고 사람들이랑도 안친해. 너무 힘들어. 할 수 있는게 자는 거 뿐이야. 정말 너무 힘들다ㅠㅠ 그래도 아빠 오면 신발 바꿔신고, 커피도 마셔야지. 코로나때매 면회 안되는거 너무 슬프다. 친구도 온댔는데 못만나고ㅠㅠ 입원생활 좆같아. 으어으어. 사람들은 왜들 저렇게 빨리 잘 친해지는지.. 여기서도 나는 아웃사이더구나.. 딱히 친해지고싶진 않아. 짜증나, 짜증나!!! 너무 힘들다. 토요일에 내보내 달라고 해야겠다. 제발... 혜운(상담자) 만나러 갈래ㅠㅠ 나 좀 내보내줘ㅠㅠ 우울하다ㅠㅠ



꼬맹언니 보고싶다. 예전 일기들을 보니, 꼬맹언니가 있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언니 나는 언니가 말한대로 병원에 왔고 입원도 했어. 근데 생각보다 좋지 않네... 너무 갑갑하고 답답하고 심심해. 나도 입원하면 좋을까? 약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별로야... 얼른 퇴원하고싶어. 근데 나갈수가 없다네 ㅅㅂ 내일도 피 뽑는다는데 너무 끔찍하고.. 이 망할 모나미 플러스펜 너무 맘에 안들구 ㅜㅜ 다 맘에 안들어!!!!




주치의 면담. 이번엔 좀 로봇같지 않았다. 아까 메모해 둔 것을 바탕으로 대화가 좀 됐다. 나보고 공부 많이 한 것 같다고 해서 좀 웃김 ㅋㅋㅋㅋㅋ 이건 그냥 (경계선성격장애)진단기준인데? 하고 주치의가 말했다. 개웃 ㅋㅋㅋㅋ 그럼 내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하고 진단기준 파헤쳤는데ㅡ 아 근데 또 숙제 생겼다... 언제 다 한담.. 어려운 숙제인데...ㅠㅠ 심리검사지도 있다. 그러고 피검사도 매일 한다그러고... 터너증후군 검사도 한다그러고ㅜㅜ 이상한 검사란 검사는 다 하는듯.. 아 피곤하다 오늘 하루 한 것도 없이 왜이렇게 피곤하냐ㅠㅠ 졸 피곤.. 시발.. 이제 곧 아빠가 와서 물컵이랑 커피랑 슬리퍼를 줄거다. 얼굴 보고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ㅠㅠ 목말라.. 아빠 올때까지 기다려야지.. 으어ㅠㅠ




오늘은 그래도 하루가 좀 빨리 간듯? 벌써 8시 반 다되어 간다. 투약시간. 아빠한테 물컵 받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커피랑 아이스티도 먹었다. 호호. 갑자기 기분 조아짐ㅋㅋㅋㅋ 존나 다운돼있었는데.. 갑자기 좀 살 것 같다. 으어 내일은 검사 또 검사. 오전 내내 검사할 듯.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걱정이다. 오늘도 못자면 ㅜㅜ 으어어.. 아직도 병동에서 얘기 나누는 사람은 없다. 외톨이.. 회사에서랑 다를게 뭐냐 시바. 회사라는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구나.. 하 진심.. 어울리는 거 너무 힘들다. 내일 또 피 뽑기 싫은데.. 피만 안뽑으면 좋겠다 제발.. 어휴 오늘 몇 자를 적은거야 대체 ㅋㅋㅋ 다 쓸데없는 말들 ㅋㅋㅋ 오늘은 제발 좀 푹 자길 바란다.. 새벽에 수면제 타는 일 없기를...





이날의 일기를 옮겨 적으니 꽤나 길군. 병원에서는 계속 노트에 손으로 일기를 적었다. 아무래도 손으로 적다 보니, 조금 더 즉흥적이고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입원 첫 날 교수님 면담에서 교수님이 나보고 어떤 면이 경계선 성격장애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으셨고, 그렇다면 왜 그러는 것 같냐고 물으셔서. 혼자 생각하면서 일기장 뒷면에 정리해서 써 보았다. 주치의 면담때 그거 써봤다고 보여드렸는데, 주치의가 내가 쓴 것들 보면서 이거는 그냥 진단기준인데요?? 하고 놀라면서 본인이 이렇다는거죠? 하고 물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주치의가 내게 공부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해서 웃겼다ㅋㅋㅋ 나는 웃으면서 네 저 책도 많이 읽어보고 인터넷으로도 찾아보고 그래서 진단기준 다 알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주치의는 내게 본인이 본인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어서.. 원래는 자기들이 환자들한테 정확한 병명에 대해 알려주거나 하지 않는데, 나한테는 그냥 터 놓고 말하겠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아... 이 선생님도 내가 경계선이 맞다고 생각하시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언제 죽고싶은지 에 대해 써 오라는 숙제를 내 주셔서, 그것도 한번 정리해 보았는데. 쓰면서 뭔가 나도 되게 정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 죽고 싶은 지


1. 공허할 때

주로 혼자 있을 때, 아무 이유없이 공허해지다가 갑자기 죽고싶어짐. 세상에 나는 혼자야 라는 생각. 외롭고 공허하고 슬프다.


2.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을 때. 소외감 느낄 때.

아무도 날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그저 배경화면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아, 죽어버리고 싶어.


3. 누군가 나를 미워할 때

미움받는 기분을 느끼면 죽고싶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 말해도 상쇄가 되지 않아.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만 집중해서 죽고싶어짐.


4. 엄마가 나를 미워할 때

엄마가 나를 쓰레기통에 쳐박는 말들을 기분에 따라 할 때,

너무 화가 나면서 동시에 죽고싶어진다.


5. 창피함이나 수치감을 느낄 때

나무님(집단상담 리더)이 나보고 경계선이라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했을때.

나무님이 니가 뭔데 나한테 사적으로 연락하냐고 했을 때.


6. 내가 너무 싫을 때. 자기혐오.



병동생활 이틀째엔 사람들이 보였다. 내 병실의 두 친구가 다른 병실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 놀고, 밥도 병실에서 안먹고 다른 친구들이랑 치료요법실에서 다같이 먹는 모습을 보고. 소외감을 느꼈다. 여기서도 나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구나.. 혼자 병실에서 쭈구리처럼 있구나... 하고... 회사에서의 사회생활이나 어릴 적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되어 마음이 안좋았다. 같은 병실 친구들 모두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나는 전혀 말도 트지 못하는구나..싶은 생각에 우울했던 둘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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