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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Dec 07. 2022

20211203 금요일: 개방병동으로

두번째 입원: 20211130~20211208

아침: 여전히 폐쇄병동

오늘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ㅈㅇㅈ 간호사가 병동에 복귀한 것 같은데.. 뭔가 나를 못알아보시는거같아서 무척 서운했다. 아침에 옆 침대 환자한테 다정하게 말걸로 나한테는 쌩 - 하길래 진짜 나를 모르나? 하다가. 운동삼아 병동을 돌면서 스테이션을 지났는데. 스테이션에서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기분 어때요? 나는 가서 대답을 하고는, 혹시 저 기억 못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기억한다고 답하면서, 혹시라도 자기가 먼저 아는 척 하면 싫어할까봐 싶어서. 아는척 안했다고 말했다. 아.. 이게 그 세심한 배려였구나...


오늘의 꿈은 참 다채로웠다. 회사가 잠깐 나왔고 예전 헤어진 친구 E가 나왔다. 회사 29층에 간식을 전달하고 카톡을 확인해보니 E로부터의 카톡이 와있었다. 첨엔 랄라한테 온 듯도 했던. 하지만 E었다. 그 후로 장면이 바뀌어, 내가 자율주행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운전대를 잡더니 차선 너머로 떨어져서 숲이나 늪 같은 곳에 꼴아박혀 죽었다. 어찌됐든 "죽었다" 라는 감각이 나를 에워쌓다.


교수와의 면담은 5분 남짓. 항상 느끼는거지만 교수한테는 마음이 안열린다. 그래서 별 말을 못하게 된다. 아마 나는 나를 방어하는것도 같고.. 그냥 교수가 싫다. 나한테 별 관심도 없는것같고.. 아 맞다, 실험결과 물어본다는걸 깜빡했네. 교수가 여기서 지내면서 불편한것을 묻길래. 주치의 얘기를 했다. 주치의가 언제 오는지 항상 목빠지게 기다린다고. 온다고 했는데 안오면 정말 화가 나고 왜 거짓말해!!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니, 교수가 웃었다.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지 않냐고... 여기서는 모든걸 주치의 통해서 할 수 있으니.. 당연한거라고.


오늘은 ㅇㅈ 라는 18세 고2 학생과 병동을 돌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병동에서 지금 가장 밝고 사교성 좋은 착한 아이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연락처를 건네는걸 주고 받고 말았다. 원래 나는 원칙상 (병원의 원칙 + 나의 원칙) 병동 사람들과 연락처 교환 안하기로 했는데 말이다....


ㅅㅁ씨. 우리 병실 나머지 한 친구랑도 친해졌다. 아 기쁘다 ㅎㅎ 재밌고 기뻐서 조증이 올 것 같다. ㅋㅋ 정말 개방병동에 가고싶지 않다~~ 여기는 ㅈㅇㅈ 간호사도 있고, ㅅㄱ씨도 있고, ㅅㅁ씨도 있고! 차라리 그냥 여기에 계속 있을까도 생각이 든다... ㅅㅁ씨가 우리 주치의 얘기 하면서 작년 주치의들 중에 우리 주치의가 제일 나아보였다고 해서 으쓱하고 기분 좋아졌다. 나보고 ㅈㅊㅇ쌤 당첨된거 진짜 복이라고 ㅎㅎ 역시 우리 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잘하는구나.. 진짜 너무 기분좋네 ㅎㅎ (ㅅㅁ씨는 작년에도 올해에도 여러번 입원을 해 보아서 병원 내 사정이나 의사들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다) 얘기를들으면서 알게된건데, 원래 폐쇄병동은 1년차 주치의만 맡는거라고 했다. 어쩐지 병동 돌면서 주치의 이름 확인해보니 우리 주치의 이름이 내 병실 앞에밖에 없더라.. 2년차는 소아아동쪽 맡는다고... 그래서 궁금했다.. 나는 어떻게 우리 주치의가 (2년차임) 그대로 맡아주는건지... 나만 특별히 봐 주시려고 그런건 아니겠지? 음.. 그런거였음 좋겠다 ㅎㅎ 또 ㅅㅁ씨랑 공통된 관심사 중 하나는 BPD 였는데.. 우연히 BPD 이야기를 하다가 ㅅㅁ씨도 언니도 BPD에요?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ㅅㅁ씨도 자기가 겪었던 BPD 증상들을 이야기했는데 정말 너무너무 공감이 많이 되고 또 재밌고 좋기도 했다.



오후 3시경: 개방병동 자리가 났어요! 이동준비해요!

분명 개방병동 자리는 주말에나 난다고 했는데.. 갑자기 간호사실에서 나를 불렀다. 개방병동 이동할 준비를 하라고... ㅜㅜ 사실 ㅅㄱ씨랑 ㅅㅁ씨랑 있는게 너무 좋아서 진심 안갈까도 고려중이었는데... 이건뭐 고민할 새도 없이 그냥 이동하라고 하니까.... 당황스럽고.. ㅅㄱ씨랑 티비보던 중에 이런 얘길들어서 ㅅㄱ씨도 표정이 굳고... 지나가던 ㅅㅁ씨는 너무 부러워하고(ㅅㅁ씨도 개방병동 가고싶다고 교수님께 말을 해놨다고 함) 여튼 그래서 당장 병실로 돌아가 짐을 싸게 되었다. 병실 친구들과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보호사님과 함께 개방병동이 있는 5층으로 이동.


오후 4시경: 개방병동

개방병동에 와서 다시 핸드폰을 돌려받고 짐정리도 다시하고, 뭔가 새로운 세팅에 또 들떠있었다. 여긴 진짜 일반 병실처럼 커튼도 칠 수 있고 침대에 식탁까지 놓여있어서 훨씬 더 좋은 환경이었다. ㅎㅎ 또 제일 좋은건 산책이 가능하다는것! 최대 1시간씩 횟수 제한없이 밖에 나가서 병원을 돌아다닐수있고 커피도 사 마실수 있고! 그래서 짐정리가 끝나자마자 바로 커피 사마시러 감 ㅋㅋㅋㅋㅋ 드디어 갑갑한 병실을 벗어날수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 너무 신나서 꺅꺅대고 있었다.


주치의는 오후 늦게 면담을 왔다. 일단 개방에 온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퇴원 후에 벌어질 힘든 일들에 대한 대책을 한번 세워보자고 했다. 회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럴때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해 얘길 하면서 상담쌤이 소개해 준 방법에 대해서도 말해다. 내가 예상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미리 적어놓고 실제로 상대방이 한 반응을 종이에 적어서 두 개를 비교하는 일. 주치의는 그것을 해 본 결과 어땠냐고 물었는데, 물론 내 예상과 다르다는것을 알게는 되었는데 그것만으로 아, 세상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진 않는구나 라는 명제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원래의 내 생각이 (-)라면, 다른 반응을 보고 (0)점 까지는 가는것같은데, (+)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니, 주치의가 그렇죠.. ㅇㅇ님은 수만배만큼의 (-) 를 가지고 있고 게다가 거기에 자석도 있어서 아무리 (+) 가 오더라도 잠깐 (0)에 머물고는 다시 (-)로 내려가는것같다고 말해서 무척 공감을 했다. 역시 우리 주치의 말 하나는 기깔나게 함 ㅋㅋㅋㅋ ㅅㅁ씨가 괜히 우리 주치의 말 잘한다고 하는게 아니었던듯. ㅋㅋ


그리고 주치의가 오늘 병동에서 좀 불편한 관계? 가 없냐고 물어서 교수님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입원 첫날 교수님 면담 후 자살충동 올라왔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주치의는 매우 흥미로워 하면서 교수님께 얘기해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교수님이 흥미로워할 것 같다고 말하길래 걍 오케이 해버렸다. 흑흑 나 이상한 사람 된 거 아님??? 창피해 죽을것같더라... 근데 주치의는 얘기하기에 아주 좋은 포인트 인 것 같다며 낼 오전에 다시한번 얘기해보자고 했다. 정말 무섭다. 이럴때 이해받지 못할까봐서.. 주치의가 이런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걱정이 조금 된다. 더구나 교수님은.. 뭐라고 생각할까.. 얼마나 어이없어하실까 말이다... ㅜㅜ 오늘 아침 꿈 얘기도 주치의랑 했는데, 주치의는 나의 불안함이 많이 투영된 꿈 같다고 이야기 했다.


개방 와서 좋은점 또 한가지는, 편의점에 갈 수 있어서 잘 써지는 날카로운 펜을 샀다는 점이다. 폐쇄에서는 모나미 플러스펜밖에 못쓰게 되어있어서... 그 뭉툭한 플러스펜으로 개발새발 글씨를 썼었는데.. 개방에 와서는 훨씬 잘 써지는 펜으로 더 예쁜 글씨를 쓸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상담쌤과 친구들이랑도 연락을 했다. 폰이 다시 생기니, 상담쌤에게도 문자 하나 보내고, 친구한테도 톡 보내고 ㅎㅎ ㅇㅅ언니한테도 톡 보내고 ㅎㅎ 그런데 여기는 헤어드라이어기를 개별로 준비해와야해서.. 그게 좀 난감했다. 머리 말려야하는데.. ㅜㅜ


물론 폐쇄에 비해서 개방에서는 사람들 간 교류가 없다보니, 심심하긴 하지만, 시간이 아예 안가는건 아닌것같다. 종종 나가서 산책도 할 수 있고. 폐쇄에 있었더라면 8시 반이 되기를 (투약시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 시간인데.. 여기서는 시간이 잘 가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걸 느낀다. 그런데 폐쇄에 남아있을 아이들 생각이 조금 난다. 자유를 빼앗긴 아이들.. 뭔가 개방은 진짜 요양 느낌이고 폐쇄는 치료의 느낌이 더 강하다. 나는 요양 단계까지 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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