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의 희망을 품고 앞으로

by 발작가

나는 속에 분노가 많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적개심이 가득하다. 그것은 8년 전, 그러니까 정신과 치료를 막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전혀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여전히 내 안에는 분노와 적개심이 들끓고 있다.


최근 MMPI 라는 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반사회성 척도가 나는 가장 높았는데, 상담쌤에게 그럼 전 잠재적 범죄자라는 소린가요? 했더니, 그게 아니라.. 쉽게 말하자면 화, 분노가 극심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8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겠지? 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폭발 직전에 있었고. 실제 내 일상생활이나 치료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3년 가까이 함께 관계를 쌓고 라포를 형성한 상담선생님에게도 굉장히 적대적이다. 여전히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올해가 들어서 트라우마들이 잔뜩 건드려지면서, 나의 예민성은 극에 달했고. 상담을 갈 때마다, 불편한 점들이 여럿 생겨서 다음시간에 하나하나 기억했다가 조목모족 짚어 표현하곤 했다.


최근에 선생님을 향한 분노중에도.. 몇 주에 걸쳐서 계속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또 듣고..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포인트에 대해 분노가 올라온다. 다음시간에 가서 또 따져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참 나도 징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3주째? 같은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계속 분노 하는 꼴이라니. 심지어 선생님이 하는 말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생님한테 가지고 있는 몇 퍼센트의 좋은 마음들을 붙잡고 이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계속 지속하고 있다. 일단은 그 점이 예전과는 다른 부분일 수 있다. 여전히 나는 분노하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사정이 있을거야.. 라며 들어보고자 애쓰는 것. 이야기를 듣고도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믿어보자 애쓰는 것.


그 애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도 그걸 알기 때문에. 계속 나를 만나는 것이겠지. 그 일말의 작은 가능성 하나로 우리는 계속 치료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확실히 최근에는 MMPI 검사결과지도 그렇고, 상담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일상적인 모든 활동들이,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이. 나를 너무나도 절망하게 만들었다. 상담만 7년을 받았는데. 그 7년중에 단 한 주도 상담을 쉰 적 없고. 오롯이 7년을 달려왔는데. 그 노력에도 나는 여전히 이 상태구나. 라는 절망감. 3년가까이 만난 상담선생님에게도 여전히 부적절한 분노 표출에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구나 라는 절망감.


나도 모르겠다. 이 절망감이 뒤집어져 다시 희망으로 떠오를지. 아니면 내가 절망감에 짓눌려서 다시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애씀과 노력을 하는 나에게 약간의 토닥임을 주고싶다. 검사결과에서 여전히 나는 내면에 분노가 가득차있다고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소중한 관계에서는 이제는 그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조금은 붙잡을 수 있게 되지 않았냐고. 7년간의 상담 시간은. 나에게 이런 것을 알려준 것이 아니었냐고.


언젠가 상담선생님도 의사선생님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어, 치료관계를 종료하고 서로의 안녕을 빌며 이별하는 상상을 한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 언젠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지금껏 7~8년 기어왔으니, 앞으로 또 7~8년 만큼 기어가면 서로의 안녕을 빌며 이별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지도 몰라. 그만큼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또 이 치료를 앞으로 나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외로운 치료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