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죽거든 술 독 아래 묻어줘 술독이 셀지도 모르쟎아? >
술에 취한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아직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려는 행동을 하는 사람 자체가 정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술 마실 명분을 만들고 술에 취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객기로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행동들이 함께하는 동료들과의 소속감을 굳혀주고 영웅놀이의 시험대가 되어 서로의 관계를 끈끈하게 연결해 준다. 물론 언제나 이성적이지는 않다. 사람 관계를 머리로만 하는 사람들이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릴 때는 사귀는 이성과의 기념일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하곤 했다. 보통 100일이나 200일, 1주년 같은 날인데 남자 쪽 친구들과 여자 쪽 친구들이 모였다. 사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모여 축하 해 줄 만한 기념일은 아니었다. 그저 여럿이 놀기 위한 명분인 셈이었고 그때는 그것이 문화였다.
술자리가 시작이 되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친구들은 짓궂은 축하를 해준다.
2000cc의 핏쳐잔에 <폭탄주>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주와 맥주만을 섞은 폭탄주가 아니다. 그것은 마시는 동안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주는 진정한 폭탄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쓸데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만들어주는 폭탄주를 고마워했고 그 짓궂은 장난을 받아주며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확인했던 시절이었다. 의미로만 보면 참으로 낭만적이지만 실제로 폭탄주를 먹는 순간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았다.
폭탄주 제조는 소주와 맥주는 함께 부으며 시작된다. 그러고는 케이크의 생크림조금, 적절한 안주 2~3개를 빠트려 잘 섞어준다. 때론 찌개의 국물까지 넣어서 색깔이 붉게 변하기도 했다. 김치찌개의 배추 끝자락이 흐물거리며 커다란 술잔 안에서 빙빙 돌고 있을 때도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우던 담뱃재를 털어 넣기도 했고 그냥 섞으면 맛이 없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손을 넣어서 휘저어주는 친구도 있었다. 이 정도 되면 폭탄주가 완성이 된다.
완성된 폭탄주는 500cc 맥주잔 두 잔에 나눠 담아 커플 앞에 놓아준다. 으례 예정된 순서였다. 테이블에 앉은 20여 명의 친구들은 빨리 원샷하기를 바라며 부축인다. 대부분 커플의 남자가 먼저 일어서 호기롭게 원샷을 한다. 죽을 맛이다. 여기서 재미없게 폭탄주를 못 마시겠다며 뺀다던가 논리적인 이유로 반박하며 이런 구시대적인 의식 따윈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날로 그곳에 있는 모든 친구와는 <안녕>이 되어 버린다. 기념일 파티까지 열었다면 폭탄주를 마실 각오는 하고 나오는 것이 의례적이었다.
폭탄주의 건더기를 걸러서 500잔에 나눠주는 것은 그나마 세련되게 바뀐 문화였고 굉장한 배려였다. 그전에는 2000cc에 제조된 원액 그대로의 폭탄주를 마셔야 했다. 술을 마시며 목구멍에 딸려 들어가는 흐물한 김치의 느낌은 상상에 맡기겠다.
남자가 폭탄주를 원샷 하는 동안 친구들은 쉼 없이 소리를 지르며 응원한다. 옆에 여자친구는 폭탄주를 바라보며 난처하게 앉아 있다. 분위기가 최고조로 올라가는 것은 이제부터다.
폭탄주를 모두 마신 남자는 잠시 숨을 돌리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폭탄주를 들고 대신 마시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열광한다. 이런 무식하고 비이성적인 곳에서 우린 낭만을 찾았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내 여자를 위해 희생할 수 있고, 지켜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어린 시절의 영웅놀이 같은 의식이었다. 짓궂었지만 누구 하나 말리는 친구는 없었고 그런 의식을 함께 챙기고 나눈 다는 것 자체가 아무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친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소속감을 결속시키기 위한 음주문화가 하나 더 있다.
<공동운명주> 또는 <사발주>라는 것이다. 커다란 냉면 그릇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소속된 모두의 인원이 돌아가며 한 번씩 마시는데 한 바퀴를 다 돌 때까지 그릇을 비워야한다. 만약 앞쪽에 먼저 마시게 된 사람들이 적게 마시게 되면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엄청난 양의 술을 모두 혼자 마셔야 했다. 그래서 소속된 인원이 서로를 배려해서 술을 나눠 마시라는 뜻으로 돌리는 잔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식한 짓이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은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사발로 술이 돌아가고 소속된 인원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 술을 더 마셔주는 것이 느껴지면 진한 소속감을 느낀다. 말로 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아마 단칼에 사양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논리적인 이유가 있고 눈앞에 보이는 득과 실을 빠르게 파악한다. 한번 해보지도 않고 머릿속의 데이터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아주 스마트한 삶을 추구한다. 대체적으로 이런 친구들은 정이 없다. 소속감이 없으니 언제나 개인주의다. 업무적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놨는데 돈 몇 푼에 라이벌 업체로 이직하는 모습을 실제로 경험 한 적도 있다.
낡고 비이성적인 문화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방법이 낡아서 세련되지 못하지만 그런 문화도 경험해볼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은 시대가 변했다며 자신들의 문화만이 옳은 듯이 이야기하지만 구시대적인 것은 그 나름의 멋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모든 젊은 친구들을 포괄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변하는 시대만큼 요즘 친구들의 세련된 가치관도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옛날이야기였다. 요즘엔 술 없이도 충분히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훨씬 깔끔하고 불필요한 것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릴 일이 없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다만 애주가의 입장에서 옛날의 거친 술 문화가 만들어준 낭만과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술이 흩어놓은 육체 밖으로 나오는 진실로 우리는 관계를 유지했고 서로를 믿었고, 그 것을 추억이라 포장하며 다음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삼았다.
모든 것은 한때 일뿐이다. 중년이 된 이제는 옛날의 폭탄주나 사발주를 마실 체력도 없고 이제 와서 그런 의식들을 하면서 지키고 싶은 우정도 사랑도 없다. 무모했던 행동으로라도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젊은 날이 그리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