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해야 하는데 술은 못 끊겠어
늦은 퇴근 후 집에 오면 언제나 아련한 허기가 진다.
밤늦게 무엇을 먹고 잔다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걱정이 들면서도 내 손은 이미 냉장고를 열고 있다. 두리번거려도 마땅한 것이 없을 땐 방향을 돌려 라면을 보관하는 문을 연다. 얼마 전 모델하우스에서 준 진라면, 장 보러 가면 채워두는 신라면과 짜파게티, 그리고 종종 사두는 너구리 중에서 고른다. 그게 뭐라고 고르는 재미가 생기기도 한다. 조금 덜 피곤하고 기분을 내고 싶을 땐 라면에 파도 송송 썰어 넣고 계란도 하나 탁! 하고 빠트린다. 하지만 밤에 먹는 라면은 생존의 문턱에서 내린 결정이기에 대부분은 빨리 끓여서 먹어치운다.
라면을 끓여놓으면 아지랑이 같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 나를 혼자 먹을 건 아니지? >라고 몸을 흔들며 유혹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소주를 꺼낸다.
사실 소주는 진작에 사두었다. 멋진 안주가 기다리고 있다면 마시려 준비해 둔 것이다. 그런 안주가 아니라면 냉장고에 넣어두기만 하겠다고 매일 다짐했다. 습관적인 음주를 줄여보겠노라고 했던 다짐은 아지랑이 아래 뜨겁게 달아오른 라면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매일 술을 마신다. 그래야 하루가 정리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다.
늦은 시간에 아무리 먹어도 다음날이면 날아다니던 젊은 날이 자주 그리워지는 것은 분명 청승일 것이다. 문득 바로 앉아서 두 다리를 쭉 펴고 발가락을 잡으려는데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듯 했다. 앞으로 숙여보지도 못하고 팔만 앞으로 뻗은 채 앉아 있는 무안한 스스로와 마주쳤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들키지는 않았다. 라면을 마저 먹고 벗어던진 옷가지처럼 쇼파에 늘어진 나의 육체가 안쓰러웠다.
< 한때는 괜찮았는데... >
< 너도 나이 들어봐라 >라는 어른들의 말이 나는 피해 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 배가 나오고 뻣뻣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는데 내 몸은 이미 젊음을 많이 잃었다. 라면을 소화시키는 동안 생각도 깊어졌다.
건강검진을 받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거나 술 주정으로 실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술이 싫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시간을 이길 수야 없겠지만 많이 나태했음을 알았고 흐르는 시간에 내 몸을 무방비로 노출시킨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내 몸은 쓸만하다고 믿고 싶었다. 창고에 먼지 쌓인 자전거 정도라면 체인에 기름을 바르고 핸들을 교정하면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다시 움직이자! >
확연한 식스팩은 아니라도 희미하게나마 식스팩의 흔적을 남길 수 있고, 허리보다는 어깨가 넓은 역삼각형의 체형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로 앉아서 발끝 정도는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운동프로그램을 세우고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실천했다.
식습관도 고치고 평일엔 금주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첫날이었다. 퇴근이 늦으니 야식을 안 먹을 수는 없고 가볍게 먹기 위해 상에 앉았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씹는데 자꾸 허전해졌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목구멍과 뱃속에서 술을 달라는 아우성이 들렸다.
갑자기 패턴을 바꾸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명분(?)으로 막걸리를 딱! 한 잔만 따라서 식탁에 올렸다. 밥이 맛있게 넘어갔다. 첫날은 술을 줄였다는 사실로 만족했다.
다음 날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졌고 일어난 김에 유튜브에서 모닝 요가를 검색 해서 쉬운 동작부터 따라 했다. 종이박스를 여러 번 접어서 더 이상 접어지지 않듯 내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은 발끝에 가있지만 손끝은 허공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온몸을 몇 번이나 떨며 첫 요가를 마쳤다. 개운했다. 군 시절 비몽사몽 타의로 시작된 구보가 끝나고 나서 숨을 고를 땐 개운해지는 것처럼 상쾌했다.
출근을 하며 생각했다.
< 막걸리 한 잔 정도는 괜찮겠는걸? >
매일 아침 요가와 그날 해내야 하는 운동프로그램을 소화하며 일주일이 지났고 어제 냉장고에 장수 쌀 막걸리를 한 병 사두었다. 되도록 마시지 않으려 하겠지만 나약해진 나의 의지에 진다면 막걸리 한 잔만 허락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매일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했는데도 몸에 변화가 없다면 그때 막걸리도 금주해보려 한다.
글을 쓰고 나니 나는 참 진지하게 웃긴 놈이다. 몸을 만들겠다면서 술은 포기를 못하겠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