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딱! 한 잔일 줄이야...

소주 한 병 주문하고 한 잔만 마시는 이유

by nAmsoNg



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모든 결정에 <검소함>의 잣대를 들이밀고 한참을 고심해야 겨우 지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야 안심이 됐다. 그것은 철저히 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다. 지갑속의 여력이 저절로 나를 그렇게 고심하게 만들었으니 검소함이 아닌 빈곤이었을지도 모른다.

술을 좋아했지만 밖에서 마시는 술값에 많은 지출을 하지 않았다. 반주로 진하게 마시고 한 두차례 자리를 옯기는 것이 고작이었고 비싼 술집은 가지도 않았다. 선배나 친구가 양주를 산다면... 못 이긴척 따라나서며 얄궂은 자존심을 지키기도 했다.

술을 마시다보면 어느새 잡아먹은 시간이 포만해져 자리를 끝내야 할 때가 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딱 한잔이 부족한 시간이 온다. 결국 한 병을 더 주문하고 검소한(?) 나는 주문한 술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버렸다. 몇잔을 주고 받으면 안주가 부족하고 안주를 시키면 또 술이 부족해지는 뫼비우스 같은 현장이 이어졌다. 참으로 미련한 젊은날이었다.

내가 술자리에서 만난 그 누구도 술자리의 마지막 한 잔을 위해 주문한 소주를 남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애주가들의 공통점이었고 술에 대한 예의라고까지 생각했다. 개뿔 멋도 없는 술에 대한 집착은 습관이 되었고 돈이 아깝다는 타당한 이유로 악착같이 마지막 술병을 비우며 살았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에 입사하던 때는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업과 가정에 실패하고 반드시 재기해야만 했던 간절하고도 외로운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장님은 퇴근 후 종종 나를 불러 단둘이 치킨에 소주를 한 잔씩 기울였다. 나를 꿰뚫어 보시는 듯 내가 가진 상처를 조심히 다독여주셨다. 인생을 살며 좀 더 지혜롭게 선택하는 방법도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귀담아 듣지 않으면 치킨집의 노랫자락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이야기였지만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곱씹으며 기억했다. 나는 한참을 더 성장해야했고 사장님은 내가 가지려했던 수컷의 부드러운 향을 무겁게 내뿜고 있었다. 각자 소주 1병씩 마시고 마지막잔을 비웠을 때 나는 아쉬움이 생겼다. 술도 술이거니와 대화가 좋아서 그렇기도 했다.

"한 병만 더 주문하면 안될까요?"

"부족하니? 그래 시켜라! 내가 평일엔 한 병 이상 잘 안마시는데 마시지모"

그렇게 둘이 한 병을 더 마시고 일어섰다. 그날 사장님의 음주스타일을 파악했고 이후엔 전체 회식이 아닌 한 사장님과 독대하는 술자리에서는 각 1병만 마시고 일어서는 것이 약속처럼 되었다.


한 날은 다른지점의 관리자분과 조졸하게 술자리가 있었다. 그날은 평소보단 조금 더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술자리가 길어졌었다. 이야기가 길어져 모두 비워진 술잔을 두고 일어서지 못하는 찰나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안되겠다 우리 딱! 한 잔만 더하자!"

바로 소주를 한 병 주문했고 한 잔씩 잔을 돌리니 소주 반병이 남았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한 잔을 시원하게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습관처럼 다시 술병을 들어 따르려는데

"아니 딱 한잔! " 이라며 사장님이 웃으며 거절을 하셨다.

"어!? 남았는데요?" 나는 난처한 듯 말했다.

"그게 왜? 내 몸이 중요하니 술이 중요하니? 다음 날 집중 못 하면서 일하긴 싫거든~ "

동행했던 다른지점의 사장님은 익숙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분도 처음엔 술을 남기는 일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날 정말 큰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술을 남기는 것을 배웠다.

절제하는 것을 배운것이다.


< 사장님이니깐 돈이 많아서 아깝지 않는 거겠지? > 처음엔 이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 그렇게 절제할 수 있어서 저 위치에 있는건 아닐까? > 이런 생각이 들때부터 나도 좋은 습관은 따라하기로 했다. 좋은 습관이 사회적으로도 나를 좋은 위치로 안내 할거라 믿었다.

사실 애주가에겐 아직도 술을 남기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돈이 아까워서 악착 같이 비워버리지는 않는다. 적당량이 채워졌다고 느껴지면 과감하게 버려두고 일어선다. 덩그러니 남겨진 소주병을 바라보며 오늘 나를 위로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일어선다. 모두 비워 나와 하나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남은 술병에 인사를 하는 것도 묘한 매력이 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보면 돈이 아까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애써 그렇게 노력해야 겨우 해내는 흉내쟁이 정도지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잘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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